피의자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1일 뺑소니 혐의로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최모(29.배달원)씨에 대해 "피의자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증거능력을 인정받으려면 ①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심리상태 변동이 일어나고 ②그 심리변동이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③생리적 반응에 의해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명확히 판정할 수 있다는 세 가지 전제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③번 요건은 거짓말탐지기가 정확한 측정장치이고 질문사항의 작성과 검사(test)의 기술 및 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검사자가 탐지기의 측정내용을 객관성 있고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라야만 인정되는데 원심이 인정한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이런 세 가지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야간에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시속 30km로 진행하는 차량의 번호판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고 사고를 내고 도주한 사람이 사고장소에서 100m 떨어진 빵집에서 빵을 사다 피해자에게 목격됐다는 주장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사정이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2003년 6월 화물차 후사경으로 행인 오모(22)씨를 들이받은 뒤 구호조치 없이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지만 "사고현장 근처에 가본 일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으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거짓'으로 나왔고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도 없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