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최근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한데도 정부가 이에 대응할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재정지출 확대가 한 방법이 될 수는 있어도 이 역시 경기 흐름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출자총액제한 폐지,중단된 국책사업의 조속한 재개 등을 통해 기왕에 투자 수요가 있는 것부터 물꼬를 터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아울러 각종 정책을 둘러싼 당정 간.부처 간 불협화음을 최소화해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청와대 참모진과 경제부처 장관들의 대폭 교체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추경 편성하려면 서둘러야 정부의 전통적 경기 조절 수단 중에선 그래도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국내 금리는 실질적으로 '제로' 수준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은 한계가 있다"며 "지금은 추경예산 편성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추경예산이 실제로 집행돼 효과를 내기까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추경예산 편성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추경예산 편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현 시점에서 추경예산 편성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복지예산 확대 등으로 인한 중장기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어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종 이유로 인해 중단된 대형 국책사업들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유병삼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정치권 전체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다는 각오로 기왕에 예정된 사업들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완화로 민간 투자수요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그러나 추경예산 편성을 비롯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더라도 현재 경기를 회복세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따라서 민간부문의 경제 활동을 최대한 고양시키기는 방향으로 경제 운용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 본부장은 "설비투자 부진이 내수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할 동기가 부여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수도권 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내수 침체와 고비용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내수기업들만이라도 법인세를 인하해주거나 각종 준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세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민간부문의 활력 회복과 무관치 않다. 정부가 자원 배분 권한을 갖고 있는 추경예산 편성보다는 민간의 부담을 덜어주는 감세가 더 효과적일 것이란 이유에서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내수 회복세를 보다 강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추경예산 편성보다는 오히려 감세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운용목표 전반에 대한 재검토 필요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기 부진이 일시적인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중.장기적,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따라서 일시적 경기 부양책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지금은 어떤 한 가지 정책으로 경기를 살리기 힘든 상황"이라며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팽배해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따라서 "경제정책 결정 메커니즘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교육을 비롯한 사회 각 부문에 경쟁논리를 과감하게 도입해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참모진과 경제장관을 전면 교체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