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신용지원1부에 근무하는 채모 대리(38)는 요즘 중학교 1학년인 아들만 보면 수심에 잠긴다. 회사가 지방으로 옮길 것으로 예상되는 2009년에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생이 되기 때문이다. 채 대리는 "회사가 부산으로 갈 경우 혼자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아들의 입시 문제를 생각하면 별다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한국가스공사에 다니는 김모 부장(48)은 요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는 "아내가 서울 강남지역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 같이 내려가기 힘든 입장"이라며 "50세 넘어 지방에서 홀로 살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밥맛이 없다"고 푸념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최근 177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기로 확정한 뒤 앞으로 지방으로 근무지가 바뀌게 될 해당 기관의 직원들이 벌써부터 회사 이전에 따른 자녀 교육이나 집 문제 등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당장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될 2009년부터 전국적으로 '주말부부'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남지역으로 본사가 이전할 예정인 한 공사의 노조 관계자는 "상당수 직원들이 지방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 회사 노조가 최근 사내 직원 50여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 이상이 '혼자 내려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자녀를 두고 있는 30대 중반∼40대 후반의 직원들은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대부분 '혼자 갈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 맞벌이 부부도 배우자가 퇴직하지 않는 한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40대 초반의 한 과장은 "이전 시기가 5∼7년 후라는데 정말 이전이 될까 싶다"고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동안 살아온 기반이 서울이고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가더라도 혼자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물론 지방 이전에 기대감을 갖는 임직원들도 있다. 대체로 아이가 없거나 초등학생 미만인 자녀가 있는 30대 중반 이하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옮기겠다는 입장이다. 자녀가 고교를 졸업한 50대 이상의 경우 부부만 내려갈 생각을 갖고 있다. 20대 후반의 한 직원은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 비교적 싼 값으로 내집을 마련할 수 있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50대 중반의 모 이사는 "얘들이 다 커 아내와 함께 내려가 살 생각"이라며 "다만 가더라도 서울에 있는 집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막상 지방으로 이전하더라도 혼자 내려가겠다는 직원들이 많아 정부가 기대하는 수도권 인구 분산 및 부동산 값 안정,국토 균형발전 등의 효과는 거두기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족이 함께 이사하더라도 현재 살고 있는 집은 팔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수도권 부동산 값을 잡겠다는 정부 의도가 달성되지 않을 수 있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공공기관을 이전해도 지방이 얻게 될 세수는 고작 914억원에 불과해 지역 균형발전이란 목표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