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단체인 C협회 전무 K씨(59세). 그는 지난해 모 경제부처 과장(4급·서기관)으로 명예퇴직한 공무원 출신이다. 1946년생인 K씨는 1972년 9급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경제부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40세에 5급 사무관, 53세에 4급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그는 60세에 정년 퇴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58세 되던 지난해 막내 딸을 결혼시킨 뒤 미련없이 명퇴했다. 2년 뒤 정년 퇴직하면 집으로 가야 하지만, 명퇴를 하면 산하 협회로 나가 3년 임기 임원을 더 할 수 있어서였다. 그는 오는 2007년 환갑까지 지내고 현직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사오정(45세 정년)''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란 말이 당연시되는 민간 기업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에선 K씨와 같은 사례가 드물지 않다. 공무원은 법으로 정년이 보장돼 있는 데다 과거보다는 줄었다고 해도 퇴직 후 산하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업으로 꼽히는 것도 이 같은 '직업 안정성' 때문이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68조(신분보장 조항)는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법에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면직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년이 단체협약이나 사규 등에 규정돼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한 민간 기업과는 다르다. 이에 따라 공무원은 5급 이상이 60세,6급 이하는 57세까지 정년이 확고히 보장된다. 그러다보니 공무원은 경제가 불황이건, 위기이건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 서 있었다. 지난 1990년대말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에서 공무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지만 '눈가리고 아웅'이었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3만5759명이었던 공무원 수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지난 2002년 88만7861명으로 5.1% 줄었다. 하지만 이때 나간 사람들은 대개 기능직과 하위직 위주였다. 일정 직급 이상의 대부분 공무원들은 신분보장이란 법의 보호막 아래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더구나 지금은 6급 이하를 중심으로 한 공무원노조까지 생겨 공무원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여기에 노후를 보장해주는 공무원연금과 각종 혜택은 민간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을 벌충해주고도 남는다. 최소 20년 이상만 근무하면 연금 혜택이 주어지는 공무원연금은 월 연금액이 직전 봉급의 최고 76%에 달해 생애 평균 봉급의 60%만 받는 국민연금보다 훨씬 낫다. 퇴직 후 산하기관에서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공무원만이 누리는 특혜다. 산하기관에 재취업하면 최소 3년간 일자리가 보장되는 데다 경제적 보상도 만만치 않다. 대개 산하기관에선 공무원 시절 봉급의 3∼4배를 받는다. 이는 고위직일수록 더하다. 재정경제부의 1급(연봉 약 7000만원) 출신이 주로 나가는 산하기관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연봉은 3억원이다. 여기에 성과급으로 1억∼1억50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역시 재경부 1급 출신이 가는 캠코(자산관리공사) 사장도 연봉이 2억5600만원이다. 국장급이 나가도 산하기관에선 연봉 1억∼2억원 정도를 받는다. 공무원이 좋은 건 이뿐 아니다. 정부 부문은 특성상 민간 기업과 달리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일부 부처를 빼고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여기에 '국가를 위한 일을 한다'는 뚜렷한 명분까지 더해지니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가장 선호 직업으로 꼽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젊은이들 사이의 '공무원 제일주의'가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절실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편한 직업인 공무원만 선택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며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점차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