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도 베네주엘라 등 자원 부국(富國)들이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등 부존자원을 지키기위해 속속 자물쇠를 걸고 있다.이들은 미국 중국등 강대국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자원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대해 국가 차원에서 자원반출을 억제하는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같은 추세를 "우리 석유에서 손을 떼라(hands off our oil)"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원 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자원 통제는 에너지기업들의 개발비용을 증대시켜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외국 석유기업 옥죄는 남미 베네수엘라는 이미 자국에 진출해 있는 32개 외국 석유기업들에 향후 6개월 안에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레오스 드 베네수엘라(PdVSA)와 합작회사를 설립하라고 요구했다. 또 합작회사의 외국기업 지분은 49%를 넘지 못하고 이익의 절반은 베네수엘라 정부에 납부하도록 구체적인 계약조건까지 제시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 같은 계약조건이 싫다면 베네수엘라를 떠나라"고 하며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의 55%가 빈곤층이어서 자국의 부(富)를 더 이상 해외로 유출시켜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국제에너지에이전시(IEA)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석유 생산량 세계 8위,수출량으로는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는 석유대국이다.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지대에만 1조200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남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볼리비아도 의회에서 외국 에너지 기업에 세금을 32%까지 매기는 법안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야당과 시민 농민 등을 중심으로 석유와 가스에 대한 정부의 통제권을 강화하라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차베스를 배우라"며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에콰도르도 외국 석유기업들과의 기존 계약조건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자원통제를 강화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에너지 개발권 통제 나선 러시아 러시아는 외국기업 지분이 50%가 넘는 기업에는 천연자원 개발권을 주지 않겠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 50 대 50으로 합작사 TNK-BP를 설립한 영국 BP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경영권'과 '개발권'을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달에는 유례없이 10억달러라는 거액의 세금이 부과됐다. 미국 경제ㆍ경영전문지인 포천은 이에 대해 "러시아 석유개발 시장의 문이 닫힐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또 러시아 내 천연가스 대기업 가즈프롬의 지분을 현재 39%에서 50% 이상으로 늘려 사실상 국유화한다는 계획이다. 국영 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와 합병시키려는 계획이 최근 좌절되긴 했지만 석유사업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는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광구권 발급 권한을 중앙 정부로 제한하는 '에너지 전략 2020'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러시아는 석유 생산과 수출에서 모두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천연가스도 6083억㎥를 생산,세계시장 점유율 22.4%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원반출 억제하는 인도 최근 인도 오리사주정부는 현지에 제철소를 짓는 데 100억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포스코와 호주 BHP빌리튼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광석을 인도 내에서만 쓰도록 하겠다는 방침에서다. 여기에는 기득권을 요구하는 타타철강 등 인도 철강업체들의 로비도 한몫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와 BHP는 철광석을 반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정안을 마련하는 등 고심하고 있다. 미국 9·11 테러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자원 민족주의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1990년대에는 각국 정부가 천연자원을 시장의 수급논리에 맡겨뒀지만 이제는 석유 등을 손 안에 쥐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자기 안방문은 걸어잠그면서 해외 자원은 어떻게든 확보하려는 '보호주의적 논리'가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갈등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