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요즘 곤경에 처해 있다. 지난 1월 기아자동차노동조합에 이어 최근 현대차노조가 채용비리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데다 비록 옆집(한국노총)의 일이지만 항운노조와 전국택시노련에서도 거액 비리사건이 드러나 노동계 대표로서 도덕적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더구나 민주노총 내 강경 좌파세력들은 폭력까지 동원해 집행부의 대화노선에 반발하는 사태를 빚은 바 있다. 앞으로도 노동현장에는 노사로드맵 개정 등 노.사,노.정 간 힘겨루기를 할 메가톤급 핵심 이슈가 기다리고 있어 그의 고난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13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나 최근의 비리와 노동계의 철 지난 투쟁노선,비정규직 문제 등 전반적인 노사현안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해 나갈 것인지 들어봤다. [ 만난 사람 = 윤기설 노동전문 기자 ] -민주노총 산하 기아자동차 노조와 현대자동차 노조,한국노총 산하 항운 노조와 전국택시 노조의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노조의 부패가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르고 있는데. "노조가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노무현 정권 들어 선거 관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등 여러 분야에서 부패 척결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노동계의 경우 한국노총은 정부 사용자 권력 등에 밀착돼 있었지만 민주노총은 권력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권력과 밀착하는 과정에서 물 밑으로 부정과 비리가 싹텄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부정적 요소들을 걷어냈으면 좋겠다." -부패구조가 상당히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고,정리한다고 해도 파장이 클 것이다. "비리에서 자유로운 노조가 없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다. 비리를 낱낱이 밝혀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비리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조에 비리가 많은 이유는 뭔가.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수준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또 노조가 권력화·관료화하면서 비리에 연루된 측면도 있다. 권력과 자본에 밀착된 노조일수록 부패 정도가 심하다." -노·사·정 대표들이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 한창 협상을 하고 있을 때 인권위원회가 노동계의 주장을 대폭 반영한 권고안을 내놔 파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노동계의 운신폭이 되레 더 좁아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주노총은 원래 파견근로자법 폐기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해왔다. 실제 비정규직의 보호를 위해서는 법제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인권위는 파견법의 경우 폐기가 아니라 현행 포지티브 시스템을 권고했다. 인권위의 발표는 노동계가 후퇴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와 시장원리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비정규직 법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무분별한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고 차별 금지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는 정부 발표는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 집행 현실로 볼 때 실효성이 없다." -네덜란드의 경우엔 파트타임 근로자 비율이 전체 근로자의 40%를 넘는다. 하지만 그 나라 노동계는 비정규직 때문에 고용시장이 안정된다고 여기고 있다. 우리 노동계도 고용 안정에 눈을 돌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핵심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그래야 비정규직을 채용해도 불만이 적으나 우리 정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보편화하고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면 비정규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70년대 중반 도요타 미쓰비시 닛산 신일철 등 8개 대기업 노조 대표가 임금 인상 자제를 결의한 뒤 춘투가 수그러든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 노조들에 임금 동결을 제의할 생각은 없나. "대기업 노조들도 고민하고 있다.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겠다는 노조도 있다. 실례로 MBC는 경영혁신이나 경영 합리화를 위해 노사가 합의로 임금을 삭감하고 삭감분을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대기업 노조에 임금 동결 요구가 먹힐 수 있나. "산하 조직에 일률적으로 지침을 내려보내기는 어렵다. 총연맹에서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사회 공공성 확보 정책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교섭은 개별 노조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구축되고 고용 안정이 담보되면 임금 동결 분위기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7년 1월 시행 예정인 단위 사업장 내 복수 노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 단위 사업장마다 2~3개,또는 그 이상의 노조가 설립 될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싸고 혼선을 빚을 수 있지만 갈등이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삼성 같은 무노조 기업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무노조 기업들은 현행 단수 노조 체제를 이용하고 있다. 어용 노조와 유령 노조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사실상 노조 설립을 막고 있다. 그러니 복수 노조가 겁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파가 많은 현대자동차 노조도 혼란을 겪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 "노조 내 계파가 많다는 것은 건강한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현장활동가 조직이 적절히 활성화하고 경쟁해야 도덕성과 운동성도 유지된다고 본다." -단위 사업장 복수 노조와 함께 2007년부터 시행될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동계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데. "올해 노동현장의 뇌관이다. 전임자를 전부 없앤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노조를 인정하고 건강한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노사관계를 풀어가는 건강한 노조는 지원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위 복귀 문제를 놓고 민주노총 내부에서 충돌이 있었다. "노동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노선 차이와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조직 내 규율과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면서까지 자기 주장을 고집하면 사회문제가 된다. 민주노총 사태가 그런 우려를 낳은 상황까지 간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갈등 때문에 위원장인 내가 제일 고통받는 것도 사실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대화를 통한 사회개혁을 강조해왔다. "조직 내 강경세력의 역풍과 이견이 만만치 않다. 이들 세력이 노조 변화에 발목을 잡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막강 파워를 자랑하던 선진국 노조들도 이제 투쟁 노선을 바꿔 살길을 찾고 있다. 왜 우리 대기업 노조들은 아직도 강경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서구 노조의 노동운동은 주변 환경 변화로 인해 많이 달라졌다. 그들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역동적이라며 부러워한다. 칭찬도 많이 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노동운동이 과격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 대기업 노조들도 외국 노동계처럼 변할 수는 없나. "우리나라 노동운동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영향을 받아 많이 변화했다. 생활패턴이 바뀌어 공휴일 집회를 열어도 잘 모이지 않는다. 노동운동도 여기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큰 흐름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비정규직 대화 촉구를 위해 함께 단식투쟁을 했다. 양대 노총의 통합 가능성은 없나. "한 나라에 1개 노총만 있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한국노총과 꾸준히 공동 투쟁을 벌일 방침이다. 이를 통해 양대 노총의 조합원들이 서로 접촉하고 또 노동계 전체가 민주노조 운동으로 가도록 노력하면서 통합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간부들이 정치적으로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장이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외국에 나가 투자유치 활동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얻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주노총도 국가경제에 눈을 돌릴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은 투자유치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노동자와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생각이다. 명분 있는 일이니 내용이 괜찮으면 구태여 피할 이유가 없다. 국민과 접촉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지 스스로 고립해선 안된다. 그게 건강한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