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가들을 중심으로 수출주도 경제개발의 상징으로 각광받았던 '수출자유지역'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정부 차원에서 수출자유지역 입주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어려워진 데다 정작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도 기대보다 낮아 수출자유지역의 인기가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 "WTO 출범과 함께 해당국가 내부에서도 수출자유지역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부담이 크다는 부정론이 거세지면서 점차 이 제도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퇴색하는 명성 FT는 지난 30여년 동안 유행처럼 번져 2003년 5000여개까지 늘었던 수출자유지역의 숫자는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자유지역을 두고 있는 국가의 수도 2002년 약 120개를 정점으로 2003년 말 현재 100개가 채 안되는 수준으로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과거 10년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대한 수출자유지역의 기여도는 0.5%포인트 정도에 불과하다"며 수출자유지역의 효과가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 역시 수출자유지역이 개발도상국의 '만병 통치약'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 경제자유지역의 경우 설립된 지 14년이나 됐지만 낮은 생산성과 높은 운송비용 등으로 고작 10개의 기업이 600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세계은행은 분석했다. ◆글로벌 규제의 강화 WTO 출범 이후 각 국가간에 체결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도 수출자유지역의 전도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대부분 국가간 FTA에서는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물론 보조금 성격을 갖는 각종 지원을 금지하고 있어 수출자유지역 입주기업들이 더 이상 특별한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또 개별 FTA 외에 유럽연합(EU)과 같은 경제블록에 새로 가입하려는 나라는 수출자유지역에 대한 각종 지원을 폐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터키는 EU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수출자유지역을 통한 수출이 전체의 50%에 육박하고 있는 사정때문에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 외국의 압박도 부담이다. 미국 섬유업체들이 중국 내 경제특구에서 각종 지원을 등에 업고 싼값에 수출을 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을 주타깃으로 미 정부에 중국산 섬유제품 수입 규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수출자유지역에는 통관절차없이 화물을 선적·하역할 수 있는 단순한 자유항으로부터 중국 스타일의 경제특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가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든 수출전용지역(Export Processing Zone)을 따로 두어 세금감면과 규제완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교역상대국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효용성 없다' 내부 비판도 해당국가 내부에서도 수출자유지역으로 인한 각종 비용이 효용보다 커져 더 이상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역내?외 기업간 차별만 확대시키고 저임금 노동착취 등으로 노동조건만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출자유지역 때문에 외국 선진기술이 국가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지 못한다고 꼬집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경제특구간 외국인투자 유치 경쟁이 격화돼 무상으로 토지를 임대해주는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사회과학원의 위용딩 교수는 "외국투자유치를 위해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것은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며 "경제특구에서 제공하는 경제적 정치적 인센티브를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