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원자바오의 '출기불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중국 지도자들은 민감한 정책에 대해선 흔히 애매한 수사(修辭)를 던진다.
특히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표현을 즐겨 쓴다.
원자바오 총리가 최근 위안화 환율 문제에 대해 언급한 '출기불의(出其不意)'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는 지금 환율제도 개혁 방안을 연구중"이라며 "언제,어떤 방식이 될 지는 '출기불의'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원자바오 총리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단어의 의미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이 상상하지 못하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이를 들어 많은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상을 예고없이 단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평가절상 방침을 굳힌 중국이 단행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중국의 일부 경제전문가들도 "위안화 평가절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동조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내 환율관련 정책담당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출기불의'는 시점을 뜻한 게 아니라는 해석이다.
"언제,어떤 방법으로 환율을 조정해야할 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위안화 환율조정의 불가측성을 강조한 수사법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해석하면,원 총리의 발언은 "중국 경제는 평가절상에 따른 충격을 아직 감내할 수 없으며,더욱이 외국의 압력에 의해 환율을 조정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기존 중국의 입장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실제 중국 정책 당국은 "환율이 시장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중"이라고만 밝히고 있을 뿐 위안화 평가절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서방 연구기관 분석도 아니고,중국 국내 경제전문가들의 시각도 아니다.
위안화 평가절상 단행 여부를 결정할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관점 변화가 관건이다.
위안화 평가절상의 시기와 방법 등은 이제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슈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위안화 환율문제를 둘러싼 단편적인 주장과 관측에 휩쓸리기보다 중국 고위정책 당국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예의주시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