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1997년 말 대구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섬유산업발전 지원을 약속했다. 대구섬유산업을 21세기 첨단·고부가산업으로 탈바꿈시켜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대구를 이탈리아의 밀라노 같은 세계적인 패션산업도시로 성장시키겠다는 게 대구섬유산업 지원의 핵심이다. 이렇게 해서 '밀라노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DJ의 약속은 말로만 그친게 아니었다. 정부는 98년 3월 지원방침을 발표했다. 2000년 3월 대통령의 유럽 순방 때 직접 밀라노를 방문해 이탈리아 정부차원의 지원약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산업자원부는 사업추진 권한을 대구시로 이관했고 대구시는 이를 위해 첨단 섬유도시건설 특별위원회와 섬유산업 발전전략 기획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작업에 들어갔다. 대구가 금방 밀라노와 같이 세계적인 섬유도시로 바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밀라노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대구 섬유업의 경상이익률은 2000년 마이너스 5.0%,2003년 마이너스 1.8% 등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초 쿼터제 폐지 이후 직물수출도 크게 줄고 있다. 대구의 주력산업인 섬유산업이 지지부진하면서 1인당 지역총생산은 전국 꼴찌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엔 감사원까지 밀라노 프로젝트 추진을 제재하고 나섰다. 대구는 패션산업 육성이 어려우니 직물과 염색에 충실하고 패션어패럴밸리 조성 사업도 중단하라고 감사원은 요구했다. 여기에다 염색연구소 등 출연기관에서 입찰과 관련 비리까지 적발되면서 밀라노프로젝트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드러났다. 막대한 국고 낭비가 확인된 셈이다. 대통령까지 발벗고 나섰던 국가전략산업이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린데 대해 사업을 주관한 산자부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사업이란 이유로 기초적인 타당성 분석에서 소홀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제는 예민하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구호만으론 산업이 제대로 커가기 어렵다는 게 밀라노 프로젝트의 교훈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신경원 사회부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