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사실상의 대일 외교전쟁을 선언함에 따라 양국간 경제관계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국 관계의 급냉각으로 인한 교역규모 축소는 물론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한국에 대한 투자도 급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작년 4월 삼성SDI와 후지쓰간 PDP 특허소송으로 불거졌던 양국 기업간 특허분쟁 심화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의 통상 맞대결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우선 이번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 있는 분야는 1년 이상 '샅바 싸움'만 거듭해온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양국간 협상은 한국산 농산물 유입을 우려하는 일본의 머뭇거림으로 사실상 작년 11월 이후 5개월째 중단된 상태다. 정부도 "올해 말로 정한 협상타결 시한을 최대한 지키되 시간에 쫓겨 협상을 마무리짓지는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어서 일본이 무리한 요구를 접지 않을 경우 한·일 FTA 협상의 장기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교역규모 축소로 작년 2백억달러를 돌파한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인 전기·전자 부문의 대일 부품 수입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수입은 어쩔 수 없이 확대되고 일본으로의 수출은 감소해 양국 무역역조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경기도 파주 LCD(액정표시장치)단지 조성으로 이뤄졌던 일본 부품·소재기업들의 '한국행 러시'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작년 한 해 일본의 대 한국 투자금액(신고 기준)은 22억5천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3백15.7%나 증가한 바 있다. 아울러 이번 사태는 다음달 중 하이닉스 D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상계관세 부과 여부 결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세계무역기구(WTO)가 하이닉스 D램에 대한 미국과 EU(유럽연합)의 상계관세 부과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린 만큼 일본의 상계관세 부과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이 돌발행동을 보일 경우 통상 분야의 진검 승부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