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행장 "지주사 출범前 금융사 더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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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이 오는 28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행장직에서 물러난다.
후배 김종열 부행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비켜 앉는 것.지난 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한 이후 34년 만의 일이다.
행장업무 인수인계에 바쁜 김 행장을 찾아가 향후 구상과 지난 세월의 비망록을 들어봤다.
◆금융인생 2모작 구상
김 행장의 2선 후퇴를 '퇴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행장직에서만 물러나는 것일 뿐 그에게는 'Mr. 하나은행'으로서의 또 다른 길,즉 지주회사 최고경영자(CEO) 역할이 예비돼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앞으로 기업 인수·합병(M&A)은 내가 챙기고 기업설명회(IR)는 새 행장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해 자신이 '하나금융지주회사' 회장을 맡을 것임을 확인했다.
굳이 지주회사 체제로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신용정보이용에 관한 법'상 지주회사체제에서만 자회사간 고객정보 공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답변에서는 특히 신한은행이 지주회사를 통해 은행 증권 보험 신용카드 등을 아우르는 시너지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갖게 되는 경쟁자로서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같은 맥락에서 김 행장의 요즘 최대 고민은 지주회사를 어떤 구조로 만들지에 관한 것이다.
"보험회사에서 출발한 씨티그룹이 최근 보험부문을 메트라이프에 매각해 버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진지하게 연구해봐야 한다"는 게 그의 화두다.
다른 한편으로는 'M&A의 귀재'라는 별명에 걸맞게 또 다른 M&A도 준비 중이다.
그것도 지주회사 출범 전에 몇건을 성사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웃으며 던진 말이지만 이미 타깃이 정해졌고 상당한 논의가 오가고 있음을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후임 행장 선정의 뒷얘기
김 행장은 이번에 후임 행장을 지명하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한투금융 시절부터 지금까지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인 윤교중 수석 부행장에게 또 한 번 큰 빚을 지게 됐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행장은 일찍부터 30년 넘도록 함께 일해온 윤 수석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실제로 서울은행과 합병한 직후인 2003년 1월에는 자신이 물러나고 윤 수석을 행장으로 추대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합병한 지 얼마 안됐는데 행장을 바꾸는 건 모험'이라는 주주들의 반응에 그의 '양위(?)' 구상은 접어야 했다.
1년 후인 작년 초 김 행장은 또 한 번 윤 수석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한 번 무산됐다.
2005년엔 반드시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김 행장.하지만 뜻밖에도 후임으로는 윤 수석 대신 김 부행장을 지목했다.
"은행장은 경영의 일관성을 위해 최소 2연임은 해야 한다.
그런데 나도 윤 수석도 모두 환갑이 넘었다.
2연임을 생각하면 이제는 때가 지났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김 행장은 30년지기 윤 수석에게 가슴 아픈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당신이나 나나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
◆고난과 보람의 순간들
김 행장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역시 외환위기 때와 보람은행,서울은행 합병 시기를 꼽았다.
그나마 외환위기 때는 미리 대비한 덕택에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기아그룹이 부도나는 것을 보고 외화부채 만기를 서둘러 장기화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합병은 힘들었다.
보람은행을 합병하자마자 대우사태가 터졌다.
합병은행이 물린 금액만 1조원이 넘었다.
서울은행 합병 후에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해 4천억원이 넘는 여신을 회수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이런 저런 고비를 넘겨온 '말년 병장' 김 행장이 요즘 가장 신경쓰는 것은 자신이 새 행장을 가리는 '그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은행 경영은 철저히 새 행장에게 맡기고 나는 간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노파심의 발로다.
김 행장은 "직원들도 내 눈치를 보지 않도록 회장실은 행장실과 다른 층에 배치하고 대한투자증권 인수 후에는 아예 그 쪽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