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불과 23분새 19원을 오르내리는 등 긴박한 '번지점프 장세'를 연출했다. 외환당국이 모처럼 20억달러에 이르는 강력한 매수 개입에 나서면서 장중 9백89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을 1천원선 위로 되돌려놨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환율 추가 하락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이를 의식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동시에 '환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국제적으로 달러값이 박스권 움직임인데다 국내 외환수급이나 경제상황에 비춰 원.달러 환율만 과도하게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것은 역외 일부 투기세력의 '오버슈팅'(시세차익을 겨냥한 달러 과매도) 탓으로 본 것이다. 외환당국은 이날 "환율은 시장에 맡기지만 투기적 거래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엄포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추가 하락을 예상한 시장참가자들의 매도심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급박했던 23분간 전날 해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세가 달러당 9백75원대로 내려앉은 영향으로 이날 서울 외환시장은 개장 초부터 1천원선이 무너진 9백99원에 출발했다. 한달가량 지속됐던 1천원선을 밑으로 뚫은 환율은 잠시 주춤하는 듯 하더니 오전 11시25분께 9백89원까지 급락했다. 역내외 매도세에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외환보유액 다변화 발언까지 겹치면서 엔·달러 환율이 하락한 영향이었다. 이때만 해도 시장에선 "지지선이 없이 생각보다 빨리 세자릿수 환율로 접어든 것 같다"며 '1달러=1천원'을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곧바로 국책은행을 통한 개입성 매수세가 나오며 불과 5분도 못 돼 9백90원선을 회복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오전 11시30분 기자회견에서 "투기세력의 개입 등 외적인 변수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고,이어 한은의 본격 매수주문이 쏟아지며 11시48분께 환율은 이날 고가인 1천8원선까지 단숨에 뛰어올랐다. 여기에는 재경부도 합세,진동수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이 "외평기금 가용재원인 5조원을 활용해 시장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투기적 달러 매도세력에 대해 경고했다. 오후 들어 환율은 여전히 우세한 달러 매도심리로 겨우 1천원선을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종가는 전날보다 70전 내린 1천원30전. 이진우 농협선물 부장은 "이날 시장개입은 달러 보유자들의 매도심리를 진정시키진 못했어도 사라졌던 매수심리를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부,'환투기와 전쟁' 선포 최근 원·달러 환율을 일방적 하락으로 몰고 간 세력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역외 모델펀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모델펀드란 미 달러화와 원화,엔화,대만 달러화 등을 연동시켜 놓고 일정한 가격에 이르면 자동적으로 달러를 사고 파는 펀드다. 최근 달러 약세에 베팅한 세력들이 계속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는 상황에서 국내 수출업체들도 그 여파로 일방적인 매도에 나섰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실제 올 들어 달러화에 대한 가치가 엔화 유로화 모두 2% 이상 절하됐지만 원화만 3% 이상 절상(환율 하락)됐다. 박승 총재는 이와 관련,"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라 투기세력 등 외부의 영향에 일방적인 방향으로 환율이 움직이면 이를 방치하지 않겠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광주 한은 국제국장도 "투기적 거래가 있을 때는 드물지만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역외세력의 뜻대로 시장이 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처럼 역외에서 벌어지는 투기적 거래에 국내 외환시장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방침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