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흔히 불확실성과 단절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다가오는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상으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단절적 변화의 시대다.
어제의 강점이 내일의 약점으로 바뀌는 패러다임 역전이 전개된다.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로도 벼랑끝에 내몰릴 수 있는 위험천만의 미래인 것이다.
이 같은 경영환경의 대전환에 맞춰 경영패러다임을 바꾸고 회사 조직을 재편하는 것은 기업생존의 필수조건이 됐다.
그 중에서도 기업 경쟁력의 요체가 되는 인재경영의 발진은 21세기 경영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미 맥킨지의 굽타 회장이 '21세기는 인재확보 전쟁(the war for talents)의 시대'라고 갈파했듯이 성공적인 경영의 관건은 필요한 인재를 확보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 변화의 흐름에 부합하는 새로운 인재상을 정립하고 기존 임직원들의 가치관도 재정립해야 한다.
아사히맥주 회장을 지낸 히구치 히로타로는 "자신이 핵심인재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해서 열패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며 "핵심인재와 업무에 깊은 교감을 나누고 인간적인 매력도 공유해 조직의 활력을 높일 수 있다면 자신도 어느새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미래는 정지된 표적이 아니라 움직이는 목표물이다.
럭비공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발생가능한 주요 변수에 따라 서너개의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는 창의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인력들은 무엇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핵심역량의 집중을 위해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만능형 인재 양성도 지양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모든 일을 혼자서 다하려다 보면 고스톱으로 치면 '사사구통(많은 패를 끌어모았지만 결정적으로 점수가 나지 않는 형태)'에 빠지기 쉽다"면서 "한 부문이라도 1등을 할 수 있고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외부에 과감하게 손을 내미는 지혜(아웃소싱)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미래의 인재들은 비록 엔지니어라고 하더라도 지식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자율을 중시 여기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런 인재들을 딱딱한 조직의 틀 속에 가두려고 하다보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미국 3M사의 경우 핵심인재들의 업무에 '15% 룰'을 부여,하루 근무시간의 15%는 스스로 창안한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의 경우 바람직한 인재상에 대해 "앞으로 회사는 단순히 똑똑한 사람(best people)보다는 일에 열정을 가진 우직하고 믿음이 가는 적합한 사람(right people)을 중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업의 가치나 문화에 부합하는 태도,가치관 등 소프트한 역량을 고루 겸비한 인재'를 가려서 등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모든 나라의 군대에서 최강의 용맹을 자랑하는 해병대의 사례를 통해 검증되고 있다.
해병대는 해병대 특유의 가치관과 행태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별도로 모집한 다음에 그들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훈련을 시키고 있다.
사병들이 강도 높은 훈련 방식에 사전 동의한 상태인 만큼 더욱 효과적인 훈련이 가능하고 결과적으로 강병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재를 끌어모으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삼성 같은 기업은 S급 핵심인재 한 사람을 영입하는 데 1백억원의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LG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도 삼성 정도는 아니지만 스톡옵션과 특별성과급 등을 통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보수를 지급해가며 각 분야에서 역량 있는 인력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인재경영에 수반되는 이 같은 과정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핵심인재 면접을 위해 자신의 전용 항공기를 내주고 있는 것이나 시스코의 최고경영자들이 영업후보 인재들이 여가를 보내는 미술관이나 리조트를 직접 찾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 등은 인재경영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투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관점은 사내에 양성해둔 핵심인력이 유출됐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끔찍한 결과들을 예상해보면 더욱 힘을 얻는다.
당장 해당 분야의 새로운 인력을 뽑는 데 비용이 들어가고 업무 공백에 따른 간접 손실도 만만찮다.
여기에 해당 인력의 전문 분야에 대한 사업전략의 제약으로 인한 비용과 유출된 인력이 경쟁사에 입사할 경우에 발생하는 경쟁역량 약화와 같은 비용이 추가된다.
결국 '인재=고객'이라는 경영패러다임의 정착 없이는 기업 경쟁력의 궁극적인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