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수상했으며 20세기 물리학의 `마지막 거인' 가운데 하나로 불린 한스 베터 전(前) 미국 코널대 교수가 9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코널대가 7일 발표했다. 코널대는 베터 전 교수가 뉴욕주 이타카의 자택에서 6일 밤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1906년 지금은 프랑스지만 당시는 독일 영토였던 스트라스부르에서 출생한 베터전 교수는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2년 뒤 코널대 교수가 됐다. 2차대전중에는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이론물리학 분야 책임자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베터 전 교수는 1938년 태양과 같은 항성이 수소를 헬륨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에너지와 빛을 방출하는 과정을 설명한 논문을 발표해 천체물리학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논문은 거의 30년 뒤인 1967년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줬다. 베터 전교수는 이밖에도 300편 이상의 논문을 저술했고 그중 다수는 핵무기 등에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어서 당초에는 비밀로 분류됐다. 그의 연구주제는 미립자로부터 원자가 생성되는 메커니즘에서 죽어가는 행성이폭발해 초신성이 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베터 전 교수는 `물리학의 황금시대'로 불리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이래 10년에 한번꼴로 현대 물리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로 인해 가장 업적이 뛰어나고 존경받는 학자가운데 한명으로 손꼽힌다. 코널대 동료였던 에드윈 샐피터(81) 명예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베터 전교수가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故) 리처드 파인먼 박사와 쌍벽을 이루는 천재였다고 회고했다. 샐피터 명예교수는 그러나 "파인먼 박사가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달라 범인(凡人)들이 배울 점이 없었다고 한다면 베터 박사는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일했지만 훨씬 더 뛰어났던 점이 차이"라고 밝혔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했던 베터 전 교수는 그러나 말년에는핵무기 금지운동에 앞장서는 등 진보적 정치활동에도 적금 참여해 수소폭탄 개발의주역으로 보수진영의 어젠다를 강조한 에드워드 텔러 박사의 대척점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1990년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의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고 밝힌 베터 전 교수는 50년대 이후 군축을 촉구하는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는 90세이던 199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히틀러가 세계를 정복할 것으로 우려되던 상황에서 핵폭탄 개발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미국과 전세계 과학자들에게 더이상의 핵무기 제조를 중단하고 기존의 핵무기도 수백개 수준으로 줄일 것을 촉구했다. 베터 전 교수는 이렇게 되면 "다시 과거처럼 미치광이 정치인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인류 문명 전체가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핵발전이 필수적이라면서 평화적인 핵이용은 적극 지지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