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재임기간 13개월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작년 2월 취임 이후 참여정부의 분배적 정책기조에 '성장'과 '시장'이란 다른 코드로 맞서면서 청와대 개혁그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그때마다 사퇴설이 꼬리를 물었지만 특유의 돌파력과 카리스마로 위기를 넘겼다. 이 부총리와 참여정부 개혁그룹간 갈등은 작년 여름 처음 표면화됐다. 당시 당·정간에 아파트 원가 공개와 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도 등이 이슈가 된 가운데,그는 한 강연에서 "386세대가 경제하는 법을 모른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직후 지난 2002년 야인시절 국민은행으로부터 자문료를 받은 게 도덕성 논란을 일으켜 사퇴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부총리는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런 식으로 뒷다리를 잡아가지고 시장경제가 되겠느냐"며 직설화법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당시 발언은 '이헌재=시장주의자'란 이미지를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 종합투자계획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려는 계획에 대해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개 반대,분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 주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작년 12월엔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 문제를 놓고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맞붙었다. '강행'을 주장한 이 위원장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여부를 봐가며 탄력 대응하자"는 이 부총리와의 힘겨루기는 참여정부의 정책노선에 대한 개혁과 보수의 갈등으로 비쳤다. 그때 이 부총리는 청와대에 사의까지 표명했으나 반려됐다. 이 부총리가 그처럼 수많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건 외환위기 직후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보여준 '위기 해결사'란 명성과 능력을 필요로 한 노 대통령의 신임과 시장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인사권자의 신임과 시장 기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정서에 반하는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란 블랙홀에선 '해결사 이헌재'도 빠져나오지 못한 셈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2004년 2월11일:취임 ▶7월14일:'386 무지론' 제기 (아파트 원가공개 관련) ▶7월17일:국민은행 자문료 파문 ▶7월19일:이 부총리,심야 해명(정치권 386세대 겨냥 불만 토로) ▶11월:종합투자계획 관련 국민연금 논란 ▶12월:1가구3주택 양도세 중과 놓고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논란 ▶2005년 2월24일:고위 공직자 재산공개(이 부총리,6년새 66억원 증가) ▶2월28일:경기도 광주 땅,위장전입 의혹 제기 ▶3월2일:3·1절 골프회동 물의 ▶3월3일:청와대 업무보고 후 대국민 사과 및 해명 기자회견 ▶3월4일:광주 땅 매입 관련,대출외압 제기 ▶3월7일:광주 땅 매매계약서 허위 의혹 제기 ▶3월7일:이 부총리,사퇴 공식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