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25원,가짜는 1백원.' 세상에 이런 상품이 있을까.


가짜가 진짜보다 4배나 비싸게 거래되는 상품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있을 수는 있다.


사는 사람이 가짜인지 모르고 비싸게 사는 경우다.


하지만 이 상품은 그게 아니다.


사는 사람도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 비싼 값에 산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상품.바로 '도토리'다.




이 '도토리'는 SK커뮤니케이션즈의 미니 홈피 '싸이월드'에서 통용되는 사이버 머니의 이름이다.


서울 경동시장에 가서 실제 도토리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봤다.


한되에 1만2천원.제철이 아니어서 비싼 편이란다.


한되에 담긴 도토리를 헤아려 개당 가격을 따져 보니 약 25원 꼴이다.


싸이월드의 '도토리' 가격이 개당 1백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짜 도토리 가격이 진짜 도토리의 4배나 된다.


묵도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싸이월드 가짜 '도토리'가 진짜 도토리보다 훨씬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도토리 경제학'이 있다.


한국은행도 모르는 화폐,'도토리'는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서 사용되는 실물 없는 돈이다.


물론 이걸 사려면 실제 돈을 줘야 한다.


도토리로는 싸이월드 안에 있는 가게에서 미니 홈피를 꾸미는 데 필요한 각종 사이버 물품(옷 가구 그림 장판 벽지 등)과 음악 등을 살 수 있다.


싸이월드에서 팔리는 도토리는 하루 평균 2백만개.돈으로 환산하면 2억원이나 된다.


따져 보면 경동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제 도토리보다 양이 많다.


2002년 첫 해의 전체 판매량이 75만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하루 2백만개는 엄청난 규모다.


싸이월드가 입소문을 타면서 도토리 수요가 늘어 2003년에는 총 판매량이 7백50만개에 달했다.


올들어서는 1월 한달에만 6천만개가 팔렸다.


도토리 1개당 1백원짜리 상품이 한달 만에 6천만개 팔렸다면 대박도 이만저만한 대박이 아니다.


2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판매량이 2백만개를 넘어섰다.


1월 판매기록 6천만개가 깨질 날도 멀지 않았다.


도토리가 등장했던 2002년 9월 첫날 판매량이 2천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2백만개는 꼭 1천배가 되는 양이다.


'도토리 경제학'은 결혼 축의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혼 축의금은 대개 흰 봉투에 돈을 넣어 전달하는 게 상례다.


하지만 도토리가 생겨난 이후 변화가 일고 있다.


축의금을 도토리로 대신하는 사례가 등장한 것.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염영씨가 대표적인 경우.염씨는 결혼 청첩장을 돌리자마자 축의금 대신 미니 홈피로 도토리 선물이 왔다고 말했다.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친구들이 싸이월드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데 쓰라며 도토리 2만원어치를 부쳐준 것."도토리 2만원어치면 굉장히 많은 양"이라며 "축의금으로 3만원 받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세뱃돈으로 도토리를 준비한 신세대도 있다.


벤처회사에 다니는 이상재씨(33)는 지난 설날 처조카들에게 세뱃돈 대신 싸이월드 도토리를 선물해 인기를 얻었다.


요즘 아이들은 '싸이질'을 많이 한다는 데 착안,색다른 선물로 도토리를 준비했던 것.이씨는 "평소에도 조카들이 미니홈피 방명록에 도토리 좀 달라는 글을 남기곤 했다"면서 "처가 컴퓨터로 50개씩 보냈는데 인기 만점이었다"고 말했다.


도토리를 둘러싼 황당 사건도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 어린이가 보낸 소포 하나가 배달됐는데 안에는 '싸이월드 도토리와 바꿔주세요'란 편지와 함께 진짜 도토리 1백58개가 들어 있었던 것.싸이월드 담당자들은 소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다 결국 싸이월드 도토리 1백50개를 선물로 보내줬다.


도토리가 고속 성장을 거듭하자 진화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사이버 상에서 사는 구매 방법을 벗어나 상품권화를 준비하고 있다.


도토리 모양의 교환권을 오프라인 상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 교환권에 새겨져 있는 고유번호를 싸이월드 입력번호란에 치면 교환권에 적힌 액수만큼 도토리를 충전하는 것이다.


도토리와 연계하는 마케팅이 등장하는 것도 도토리 경제학의 하나.


기업들이 고객을 모으기 위해 이벤트를 벌이면서 도토리 경품행사를 열기도 한다.


최근 이같은 이벤트에 적극 참가,도토리를 모은 알뜰 싸이월드족도 늘고 있다.


결국 작은 떡갈나무 열매에 불과한 도토리가 사이버 세상에서 거대 시장을 창출하는 열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글=고기완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