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고 약점이 없겠어요.권위주의와 획일적 사고,경직된 조직문화 등 고쳐야 할 점들이 아직 많습니다." 삼성전자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의 냉혹한 자체 진단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사업부 수장(首長)의 얘기로는 다소 의외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황 사장의 시선은 무척 엄격하다. 반도체 사업부가 지난 30년동안 경이롭고 역동적인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화려했던 과거가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혹시 당대의 박수와 갈채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제 자신부터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또 다른 30년을 맞이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일구기 위해선 새로운 가치와 기업문화를 구현해야 합니다." 올들어 황 사장이 '유목민 정신으로 무장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자(Creating the Future with Nomad Spirit)'는 슬로건을 들고 나온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였다. '신반도체 비전·문화'라는 이름 아래 별도의 심벌과 로고를 만들고 미래의 핵심인재상과 가치체계도 재정비했다. ◆신 반도체 문화 '점화' 황 사장이 평소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세계 D램 시장 석권에 이어 S램 플래시메모리 등에서 남들보다 앞서 전략적 요충지를 선점해온 밑거름이다. 황 사장은 이번에 '신 반도체 문화·비전'을 설정하면서 유목민의 특질인 이동성 전략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모든 임직원이 '21세기 칭기즈칸'이 돼달라는 것. 이에 따라 '신 반도체 인재상'은 △개척자(Pioneer) △혁신가(Innovator) △팀플레이어(Team Player) 등 3가지로 정했다. 황 사장은 "도전은 열정적으로,행동은 빠르게,생각은 창의적으로 하는 인재들을 발굴해 차세대 주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당장 올해 신입사원 채용 때부터 이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한편 기존 임직원들의 인사고과에도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질주는 계속된다 황 사장은 지난해 말 회사로부터 '긴급구조신호(SOS)'를 받았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사업부들의 4분기 실적이 예상밖으로 저조할 것으로 보이므로 반도체 사업부가 막판 스퍼트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황 사장은 제품 출하를 단기간에 늘리는 전략을 채택,반도체 사업부에서만 1조6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 전체의 4분기 영업이익(1조5천3백26억원)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견조한 실적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메모리 매출액은 당초 예상치를 넘어 12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반도체 비전·문화'운동이 선포되면서 임직원들의 각오도 남달라지고 있다. 팹3팀(메모리)의 변정우 팀장은 "생산제품 공기를 지난해 30일에서 20일로 단축하고 수율은 90%를 달성하자는 뜻에서 올해 부서 슬로건을 '포커스 2090'으로 정했다"며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많지만 도전의식을 갖고 추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