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부진의 늪에 빠진 '종합 엔터테인먼트 왕국' 일본 소니가 '가전업계의 인텔'로 전략목표를 수정했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디지털TV용 프로세서사업에 3년간 5천억엔을 쏟아붓는다. 일본 경영주간지 다이야몬드 최신호(12일자)는 소니가 반도체개발을 위해 창사이래 최대도박을 하고 있다며 이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구타라기 겐 부사장이 '배수의 진'을 쳤다고 보도했다. ◆소니의 '배수진'=구타라기 부사장은 소니의 게임사업부문(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에서 2003년 말 그룹 부사장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그가 맡은 소임은 소니의 복권.부사장에 취임하자마자 소니가 매달려온 '코쿤(인터넷을 통한 TV녹화)'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전사에 방만하게 퍼져 있던 각종 팀도 해체했다. 이후 모든 역량을 반도체 개발에 집중시켰다. IBM 및 도시바와 손잡고 개발 중인 고성능 프로세서 '셀' 등 반도체 개발에 2003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5천억엔을 예산으로 배정했다. 목표는 '가전업계의 인텔'이 되는 것이다. 구타라기 부사장은 소니가 매년 1조엔어치를 소비하는 반도체 중 지금은 절반을 외부에서 사다 쓰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대부분 자체 조달하고 외부판매를 병행,그 수익을 반도체에 재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무너진 엔터테인먼트 왕국의 꿈=구타라기 부사장이 부상하면서 전략 목표가 수정된 것은 수익률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소니는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종합 엔터테인먼트 왕국을 표방해왔다. 영화 게임 음반사업을 확대하고 가전부문에서는 인터넷을 껴안기 위해 코쿤 같은 신사업에 잇따라 손을 댔다. 소니가 최근 내놓은 2004년 회계연도(올해 2월까지) 실적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5%로 2년 전 이데이 회장이 2007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10%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일본 시장에서 숙적 마쓰시타에 시장 점유율이 잠식당한 결과다. 지난 4분기 조사에서 소니의 가전 종합 점유율은 22%로 마쓰시타(18%)보다 여전히 앞서지만 3년 전 14%포인트나 격차를 벌렸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위축됐다. ◆문제는 추진력 부족=영업이익률 추락에 대해 이데이 회장은 "경쟁이 너무 치열한 탓"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가전제품 메이커가 중국 등의 부상으로 최근 5년새 10배나 늘어난 탓에 공급과잉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타라기 부사장은 다른 입장이다. 그룹 전체로는 "금융 영화 음악 등 다른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동안 주력 사업인 가전부문이 약체가 된 것"과 가전사업부문 내에서는 "실체 없는 인터넷이라는 것에 모든 경영자원을 집중시키다 보니 신상품 개발에 대한 열의가 사라진 것"이 전략 실패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다이아몬드지는 "소니는 하드웨어에 인터넷을 접목해 아이포드를 내놓은 애플을 닮으려다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이 잡지는 "그러나 소니는 인터넷 같은 새로운 영역을 취급하기에는 경영구조가 훨씬 복잡하고 조직도 수평적이라 추진력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