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부터 100년 가까이 계속된 행정구역을 개편하자는 주장이 또 다시 제기돼 정치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열린우리당 심재덕(沈載德) 의원은 여야 의원 40여명의 서명을 받아 현행 행정체제를 개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이번 임시국회에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 의원도 오는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방분권화 실현을 위한 새로운 지방자치 발전모델'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행정구역 개편에 관한 여론을 수렴한 뒤 이를 토대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행정구역 개편론의 골자는 현행16개 시도와 235개 시.군.구를 통폐합해 인구 30만~100만명 정도의 광역자치단체 70개 내외로 전국의 행정판을 다시 짜자는 것이다. 시-도, 시-군-구, 읍-면-동의 3단계 지방행정체계를 개편하자는 주장은 현행 행정체제의 틀이 조선시대에 시작돼 일제시대에 확정됐기 때문에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속도로와 국도, 고속철 등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현재 교통망을 고려해 볼때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해 산맥과 강 등으로 분리한 시-도 개념은 오히려 효율적인 지방행정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구역 개편론이 성사될 경우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등 규모가 큰 대도시나 도는 몇 개의 소규모 행정구역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각종 자원이 집중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제가 편의적으로 구분한 행정구역이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지역감정을 촉발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행정구역 개편론에 힘을 싣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론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시절을 비롯해 지난해 신행정수도이전계획이 위헌 결정으로 좌절되자 정치권 일각에서 대안으로 논의에 착수하는 등적지 않게 제기됐지만, 여야의 입장이 엇갈리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 무산됐다. 이번에 제기된 행정구역 개편론도 일부 여야 의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당론과는 별개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도행정구역 개편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방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1년여라는 짧은 기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뿐 아니라, 현행 행정구역을 선호하는 지자체장과 후보자들의 반발도 거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석(任鍾晳) 대변인은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에는 많은 사람이공감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연구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그러나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인기(李仁基) 지방분권 태스크포스 위원장도 "행정의 효율성과 공공부문 슬림화를 위해 대통령선거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의할 수 있다"며 행정구역개편문제가 장기적 추진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안용수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