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부터 2004년 4월까지는 내 인생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르 내렸던 1년6개월로 기억될 것이다.


'유색칼국수집'이라는 이색 음식점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나는 두번째로 '솥뚜껑 삼겹살집'을 열었다.


지역 상권 특성과 잘 맞아 떨어져 가게는 손님들로 크게 붐볐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는 사장들이 매상이 떨어지자 트집을 잡기 시작한 것.사정을 하고 새로운 방도를 찾아보고 했지만 결국 나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은채 점포를 닫을 수 밖에 없었다.


2002년 5월 나는 세상에 '도전장'을 던지는 심정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대형 할인점에서 부당한 전출명령을 받아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상사 2명이 동업을 제의해 와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창업의 세계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처음엔 지독한 '불운'을 탓했지만 곧 업종선택에서 상권분석까지 실수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2년 10월 평소 칼국수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유색칼국수라는 이색 음식점을 열기로 하고 인천 시내 유흥가에 12평짜리 점포를 얻었다.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3백만원.월세가 다소 버거웠지만 목이 워낙 좋아 서둘러 계약을 했다.


그것이 나중에 큰 애물단지가 될 줄은 모른채.


주방인원 4명과 홀 직원 2명,아르바이트생 2명을 고용한 나는 그럴듯한 행사와 함께 개업식을 치렀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손님이 몰려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면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아 면이 붓는 등 문제점이 노출되기도 했지만 차차 좋아질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고객이 줄어드는게 느껴졌다.


오픈한지 한달 정도 지나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날씨까지 추워지자 고객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가게안은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할인점 근무 시절의 영업 노하우를 살려 가격인하 마일리지 서비스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한번 등을 돌린 고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황에다 날씨가 추워질 때 가게를 오픈한 게 실수였다.


유색칼국수란 아이템도 잘못됐다.


색깔이 들어갔다는 점 이외에 기존 칼국수와 차별화되는 전략이 없었다. 저녁식사로 칼국수는 적당한 메뉴도 아니었다.


매일 16시간에서 18시간을 주방에 매달리며 일을 했지만 보답이 오지 않았다.


월세는 3백만원씩 꼬박꼬박 나갔다.


업종전환이냐,폐점이냐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솥뚜껑삼겹살이 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운 날씨에 적당한 메뉴이고 인근 상권에서도 이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 이미 고깃집이 있다는게 문제였다.


고깃집 사장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며 조심스럽게 업종전환 계획을 털어놨다.


사장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격려까지 해줬다.


솥뚜껑삼겹살은 예상밖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가게가 매일 북새통을 이뤘다.


몸은 힘들었지만 이런식이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예전 할인점에서 배웠던 사업 노하우도 큰 도움이 됐다.


삼겹살을 주문하면 음료수를 공짜로 주고 손님이 남긴 소주를 보관했다가 주는 사소한 서비스가 기대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


단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도 못한 곳에서 사단이 생겼다.


같은 건물에서 고깃집을 하는 사장이 '딴지'를 건 것이다.


불황으로 매상이 줄고 손님까지 뺏기자 같은 건물내 고깃집 사장들이 트집을 잡기 시작했고 노골적으로 업종전환을 요구했다.


"내돈 들여 장사하는데 무슨 상관이야.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겠지"하며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사업주들과 매일 대책회의를 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압력과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매일 몸싸움으로 치닫다보니 단골손님들도 하나둘씩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장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6개월이 흘렀다.


건물관리소는 다른 사업자들의 압력을 못 견디고 마침내 전기공급을 끊었다.


가게를 처분키로 했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월세와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빚까지 내야 했다.


할 수 없이 평소 아는 사람에게 점포를 맡기고 회사에 취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몇달이 흐른후 나는 가게를 처분했다.


월세 전기세와 세금 등을 빼고 나니 겨우 5천9백만원이 남았다.


동업자 2명에게 투자금을 되돌려주고 나니 거의 무일푼 신세가 됐다.


2년여동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직장생활로 번 돈도 고스란히 까먹은 셈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쌓고 장사수완을 습득한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요즘 나는 음식점 운영 경험을 살려 푸드컨설팅업을 하고 있다.


세번째 창업인 셈이다.


불경기로 문을 닫는 음식점은 많지만 컨설팅을 의뢰하는 곳이 없어 영업은 여전히 수월치 않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지난해 결혼해 부양가족도 생겼다.


여기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면 영영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지난 날의 실패를 거울로 삼는다면 나에게도 성공의 길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정리=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