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계의 '여제(女帝)'로 군림했던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회장이 추락하고 있다. 3년 전 회사의 명운을 걸고 단행했던 HP와 컴팩의 합병이 사실상 실패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HP의 분할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데다 최근 HP 이사회는 피오리나 회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비즈니스위크,포천 등 미국 언론들은 '궁지에 몰린 피오리나''피오리나의 실패' 등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뭇매를 퍼붓고 있다. ◆컴팩 인수 실패로 판명=컴퓨터 시장에서 델,기업용 서버 시장에서는 IBM과 치열하게 경합하던 HP는 2002년 엄청난 도박을 했다. 두 시장에서 단숨에 1위가 될 수 있다며 경쟁사 컴팩을 1백90억달러에 인수한 것.당시 HP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자산을 37%나 팔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현재 HP의 서버 시장 점유율은 28.7%에서 26.6%로 줄었고,PC시장 점유율은 15.7%로 델컴퓨터(18.3%)에 완전히 추월당했다. 주가는 합병 후 15%나 추락했다. 포천은 HP가 컴팩 영업권을 1백45억달러의 자산으로 계상해 놓고 있는 것과 관련,"실제로는 가치가 거의 없다"며 장부에서 이를 빼고 컴팩과의 합병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기업 분할 압력=비즈니스위크는 최근 피오리나 회장에게 실망한 기관투자가들이 HP에 회사를 쪼개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양대 사업인 PC와 서버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돈줄인 프린터 사업을 분사시킴으로써 두 사업을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논리다. 프린터부문에서 올린 수익으로 PC와 서버 사업을 지원하는 상황이 되면서 지난해 HP 영업이익 중 프린터 사업부의 기여도는 68%에 달했다. 메릴린치는 HP의 분할이 이뤄질 경우 프린터부문은 사업 기회가 늘고,PC와 서버는 체질 개선에 나섬에 따라 기업 가치가 최대 45%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패 원인=피오리나 회장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1백가지를 다 잘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데(스토리지업체 EMC의 조셉 투치 사장) 이를 다 실행에 옮길 능력은 없다(HP 전 부사장)"는 것이다. 델과 IBM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가혹한 평가다. HP는 물론 괜찮다고 항변하면서 올해 매출이 6% 늘고 5.3%의 견실한 수익률을 올릴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월가와 언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20분기 동안 HP가 실적 약속을 못 지킨 적이 7분기에 달했다며 피오리나 회장이 신뢰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