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B)은행이 제일은행을 인수하기까지의 과정은 매각가격에 따라 향배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전형적인 인수.합병(M&A)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옛 대우그룹과 한보, 기아 등 거래재벌의 연이은 부도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은 2000년 1월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이 5천억원을 출자, 지분 49.56%를 매입하면서 구조조정과 경영정상화의 길을 걷게된다. 인수 4년째인 2003년, 대주주인 뉴브리지는 이번 인수전에서 패배한 홍콩상하이(HSBC)은행 등과 제일은행 매각을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불발로 끝났다. 뉴브리지는 그러나 지난해도 제일은행을 매각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작년 11월 진전을 보게 된다.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은 같은 달 22일 "HSBC를 포함한 복수의 기관이 현재 제일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뛰어든 상태"라며 제일은행 매각작업이 실사단계에 이르렀음을 밝혔다. 당시만 해도 제일은행 인수전은 HSBC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으나 한국시장을 교두보로 활용, 아시아 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 온 SCB가 뒤늦게 뛰어들면서 매각작업은 혼조양상을 띄게 된다. SCB의 참여는 당초 뉴브리지측이 HSBC와의 협상에서 매각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드벌룬으로 띄운 일종의 '가상 정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사작업이 종료된 지난달 24일 HSBC가 주당 1만3천500원 안팎의 인수가를 최종적으로 제시했으나 뉴브리지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HSBC의 실사단이 본국으로 철수, 상황은 SCB가 제일은행의 새로운 대주주가 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제일은행 인수의 유력후보가 HSBC에서 SCB로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매각가격이었다. 뉴브리지의 입장에서는 HSBC가 제안한 '주당 1만3천500원 안팎'을 수용하면 예금보험공사 보유지분 등까지 포함한 제일은행 발행주식의 총 매각가격이 2조7천800억여원에 그치게 되지만 SCB는 이보다 많은 주당 1만7천원 내외의 가격을 제시했기때문이다. 결국 제일은행을 SCB에 넘기면 뉴브리지는 3조5천억여원의 매각대금을 챙기게되며 이에 따라 5년만에 약 1조2천억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뉴브리지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증폭되고 있는 해외 투기펀드에 대한 반감과 함께 나머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재정경제부와 예금보험공사와의 마찰발생 가능성,금융감독위원회의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각차익을 덜 챙기더라도 국내시장에서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안정적인 장기투자를 주로 해온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HSBC가 제일은행을 인수해주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HSBC측이 지난해말 주당 1만3천원대의 가격을 최종적으로 제시한 뒤 철수, 후속협상의 여지마저 차단함에 따라 제일은행의 새로운 대주주는 인수전에 뒤늦게 뛰어든 SCB의 차지가 됐다. (서울=연합뉴스) 고준구 기자 rjko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