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여야의 행태는 '정치부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여야간 신뢰는 실종됐다. 강경파의 득세 속에서 여야간 합의가 손바닥 뒤집듯 번복됐다. 국회는 이날 합의와 백지화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한편의 정치코미디를 방불케했다. ◆당리당략 앞에 민생 실종=여야는 이날 두번이나 합의와 파기를 되풀이했다. 한번은 여당,한번은 야당이 뒤짚었다. 장애물은 국가보안법이었다. 여야의 두번에 걸친 합의는 각기 여야 내부의 강경파에 밀려 휴지조각이 됐다. 첫번째 합의는 문서화된 게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두번째 합의는 양당 원내대표의 서명까지 담긴 합의문이다. 여야의 합의파기로 여야는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다. 여야가 이날 처리키로 돼있던 법안들은 상당수 시급을 요하는 것들이다. 예산안과 이라크파병 연장동의안,뉴딜관련 경제법안들이다. 여야가 두번에 걸친 합의과정에서 모두 처리키로 돼있었으나 합의가 파기되면서 이들 법안의 처리도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입만 열면 "경제를 살리는데 당력을 집중하겠다"던 여야의 약속이 헛구호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일부 의원들은 "국민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이런 정치를 언제까지 해야될지 암담하다"고 한숨을 지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실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분노의 수준이다. "먹고살기 힘든데 정치권이 싸움만 한다"는 국민의 비판이 한계수준을 넘어섰다. 한 의원은 "지역구민들을 만나보니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아우성이었다"고 전했다. 국회 산자위 소속 위원들은 29일 남대문시장을 방문했을 때 "정치인에 표를 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본회의 자동 유회돼=당초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오후 5시로 연기됐다가 여야 원내대표 회담이 계속되면서 회의는 계속 늦춰졌다. 여야 회담과 의원총회를 통해 합의와 파기가 반복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렀고 여야는 자정이 지날 때까지 차수변경 등 의사일정조차 마련치 못했다. 결국 자정을 넘겨 회의는 자동 유회되고 말았다. 한 국회관계자는 "여야가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막가파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여야가 합의하면 31일 본회의를 열 수 있지만 여야 입장차가 워낙 커 절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여야간 합의가 안되면 법안들을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처리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이를 요청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여당의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의원 40여명은 이날 밤 12시30분쯤 본회의장 단상 근처에 진을 치고 법안 처리를 원천봉쇄했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