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스콘신대 동문들의 내년 전망 ] < 참석자 > 이충언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김원규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8일 저녁 서울 충정로 근처의 한 삼겹살 집,이제 갓 마흔줄에 접어든 네명의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들은 미국 경제가 2차세계대전 이후 누리던 호황의 대가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감내하던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박사과정)을 공부한 동문들이다. 가장 연장자인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가 말문을 열었다. # 부시 재선 효과는 글쎄 "요즘 미국 경제,우리가 미국에 있을 때랑 비슷하지 않아?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아?" 김원규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때도 쌍둥이 적자가 심각한 문제였긴 했지만,요즘 미국은 실물부문하고 재정·금융부문이 따로 놀기 때문에 감을 잡기가 더욱 힘들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충언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가 거들었다. "그때는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정적자를 축소했지.그런데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부터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잖아.그래서 환율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되는거 아닐까." 오 상무는 "그런데 환율이 절하된다고 해서 과연 미국의 적자가 줄어들까"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김 위원도 "예전 플라자 합의때도 대다수 미국 경제학자들이 의아해 했잖아.환율을 움직인다고 경상수지가 만회될까 하는 의심이 강했지.만회하는 것 보다는 더 악화되는 걸 지연시키는 정도 아닐까"라고 말을 받았다. 이 교수는 의견이 좀 달랐다. "환율을 움직이면 재정적자를 더 늘리지 않는 한 경상수지 적자는 줄지 않을까."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이런 것도 생각해 봐야 해.미국의 순부채는 대략 3조달러 정도야.그 이자가 계속 늘어나서 그것만으로도 1천억달러 이상의 적자가 생길 수 있어.그 이자지급을 위해 또 돈을 빌려야 하고.악순환이지.아무리 달러가 기축통화라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환율로만 문제를 풀 게 아니라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하는 게 중요해." 이야기는 자연스레 최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로 옮겨갔다. 오 상무는 부시가 재선됨으로 인해 미국 경제는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인들은 테러전을 수행할 적임자로 부시를 뽑긴 했는데 내가 보기엔 잘못된 선택같아.이라크 전쟁 때문에 부시는 재정적자를 줄일 수 없어.게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재정수요는 늘고 있고.달러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올라서 인플레가 발생할 수도 있고 말야.내년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어." 주 교수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인플레가 발생하면 미국은 금리를 보다 빠른 속도로 올리겠지.그렇게 되면 모기지를 받아서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고,결국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고 미국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어.이런거 고려하면 세계 경제는 내년에 더 불안정의 늪에 빠질거야." # 위안화 절상 가능성 김 위원이 화제를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로 돌렸다. 위안화 문제에 대해서는 절상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면서도 그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엇갈렸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어.재정·무역적자가 계속 확대되는데 달러 가치를 계속 하락시키자니 자본수지쪽에서 해외자금이 안들어오고,그 와중에 미국의 숨통을 터주는게 위안화 절상이 아닐까." 오 상무도 "위안화가 계속 저평가돼 있는 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해소는 힘들다고 봐.중국에서는 '왜 너희들 문제 때문에 우리가 위안화를 절상해야 하는가'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미국 하나의 문젠가"라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주 교수는 위안화 절상 가능성에 대해 신중론을 폈다. "중국이 고정환율제로 바뀐게 1997년인데 2002년 이후 달러가 약세로 가니 위안화도 덩달아 약세를 보였지.그러다 보니 중국의 무역흑자는 늘어났고,중국 정부는 환율이 불안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다 유연한 환율제도로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지금 관리변동환율제로 가면 위안화는 급격하게 절상될 게 뻔하거든.그래서 중국 정부도 골치 꽤나 아플거야." 이 교수는 "문제는 중국 정부가 버티면 버틸수록 힘들어 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상무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이 임박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 주요 투자은행들은 내년 1·4분기에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자꾸 절상 예상 시기를 앞당기는 추세야.이 교수 말대로 늦어질수록 환율조정이 더 힘들어지거든."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경제에 대한 네 사람의 진단은 낙관론 보다는 비관론 쪽에 가까웠다. 대화는 자연스레 내년도 한국의 수출에 대한 걱정으로 흘러갔다. 김 위원으로부터 내년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을 대략 어느 정도로 보고 있는지 질문을 받은 오 상무는 대답에 앞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올해보다 훨씬 줄어 들겠지.특히 원화표시로는 '제로성장'으로 보고 있어.물량기준으로 보면 한 10%내외 정도고." 김 위원은 그러나 다소 낙관적인 편이다. "대부분 그렇게 보는 것 같은데,과연 내년에 세계 경제가 그렇게 나쁠까? 난 그걸 잘 이해 못하겠어.내년에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되긴 하겠지만 그 폭은 별로 크지 않을 것 같아.원화가 절상되더라도 우리만 되는건 아니잖아.중국이 중요하긴 하지만 일본도 중요하잖아.그러니깐 내년 수출을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 교수도 "내년 수출을 비관적으로 보는건 올해가 비정상적으로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들어 수출 얘기를 하다보니 대화의 주제가 일본쪽으로 옮겨갔다. 주 교수가 "세계 경제를 얘기하면서 일본을 빼놓을 수 없잖아.일본은 이제 완전히 장기 불황에서 벗어난 건가"라며 화두를 던졌다. 이 교수는 "올해에 10년 불황을 벗어났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수 있지.엔화가 강세가 되면서 최근 다시 내려앉는 분위기"라며 다소 조심스런 분석을 제시했다. 오 상무도 "일본은 내년에 올해만큼 투자가 이뤄지기는 힘들거야.올해는 좀 비정상적이었지.일본이 다시 고성장 궤도에 접어들었다기보다는 불황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동조했다. 오 상무는 그러나 "일본이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라고 봐야지"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일본은 자신감을 되찾았지만,미국은 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중국도 여전히 불안하고…." "글쎄 그걸 잘 모르겠단 얘기지…." "야 야,한국 경제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데 세계 경제를 전망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해?" "내말이 그말이야.아예 전망을 하지 말고 점을 치라고 하는게 어떨까." 불판에 듬성 듬성 남겨진 삼겹살이 까맣게 변하고 테이블 위에 맥주병이 수북이 쌓이도록 대화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대륙을 넘나들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