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증권 집단소송제가 무분별하게 제기되는 것을 막고 관련 소송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시행규칙을 확정,오는 29일 발표키로 했지만 이 같은 방안만으로는 '소송대란'까지 우려하는 기업들의 실질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모법인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과거 분식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소액 주주의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라 소송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을 담는 시행규칙에서 엄격한 소송요건을 새로 규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증권집단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서는 시행규칙의 상위 규정인 증권 집단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는 "집단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분식회계 부분을 유예하는 문제와 손해배상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이 부분은 모두 시행규칙의 상위규정인 증권집단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진정한 오·남용 방지를 위해서는 규칙 제정이 아니라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학부)도 "소송남발 방지책이 없는 집단소송제는 날카로운 칼을 솜씨가 서투른 사람에게 쥐어 주는 것과 같다"고 꼬집은 뒤 "소수 주주들이 입은 피해 구제만큼 중요한 일은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선량한 기업이 이러한 제도 때문에 불의의 피해를 보거나,원고 이외의 주주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마련한 시행 규칙에 따르면 소장 접수 10일 이내에 소송 제기 사실을 중앙 일간지에 공고하기 위한 공고료를 내지 못할 경우 법원이 소송을 각하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적인 민사소송에서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인지대와 고지 및 공고 등을 포함한 소송비용을 국고로 대신 내는 것도 허용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증권관련 집단 소송비용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최대 수천만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 같은 규정으로 소송 제기 오·남용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최소 수억원 단위로 소송이 진행될 게 뻔한 상황에서 인지대 상한이 5천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미국은 2002년 평균 집단소송 배상액이 5백억원(3천8백60만달러)에 육박했다. 무분별한 증거조사 신청을 막기 위해 증거보전 신청이 있을 경우에만 원칙적으로 신청인을 신문토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맥 법률사무소의 서석호 변호사(44)는 "법원이 집단 소송 허가를 내리기 전에도 증거보전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문제"라며 "해당 기업은 증거보전 신청이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시행규칙에 증거보전 신청 시기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