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강소국 강중국 강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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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동안 '동북아 경제중심국'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한다고 하더니 이번엔 '강중국(强中國)'로드맵을 만든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은 일부 언론에서 떠들었던 핀란드 같은 강소국(强小國)모형은 인구 규모 등에서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독일과 같은 강중국 발전모델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강대국(强大國)일 수 있지만 미국 일본 등과 달리 강중국이라 하는 것은 인구 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가 발전모델로 삼을 대상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핀란드(인구 5백20만명) 등은 휴대전화만 팔아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인구 4천7백만명이 먹고 살려면 소수 업종이 아닌 다양한 업종에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그런 점을 모르고 강소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던 것도 아니고,또 인구가 우리보다 적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작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구 측면에서는 우리와 비교도 안 되는 강소국이지만 세계적인 기업들이 나오고 있고,또 그것이 놀라운 GDP(국내총생산)규모와 높은 1인당 국민소득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당연히 연구대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앨프리드 챈들러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는 미국'포천'지가 매년 발표하는'5백대 기업'리스트에 들어가는 기업들을 '글로벌 기업'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여기에 포함되려면 업종에 상관없이 연간 매출액이 1백3억달러,적게 잡아도 10조원은 넘어야 한다.
지난 7월 포천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보다 2개가 준 11개 기업만이 글로벌 5백대 기업에 포함됐다.
15개를 기록한 중국에 밀려 충격을 주기도 했다.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그렇다치고 우리나라가 스위스(인구 7백30만명),네덜란드(1천6백만명) 등 강소국들과 글로벌 5백대 기업 수에서 다투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소국들에서 그들의 실용주의적 기업관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및 문화를 배우고자 했고,강(强)한 기업을 통해 부(富)를 창출하는 국가적 전략에 주목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강중국을 발전모델로 삼는다고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독일은 글로벌 5백대 기업 수가 34개다.
프랑스 영국 등으로 눈을 돌려도 그들 역시 5백대 글로벌 기업수가 각각 37개,35개다.
참고로 미국 일본 등 강대국은 글로벌 5백대 기업 수가 각각 1백89개,82개다.
한마디로 소국(小國)이든 중국(中國)이든 대국(大國)이든 글로벌 기업이 많아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강중국이 되려면 보다 다양한 업종이 발전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부 예산으로 될 일이 절대 아니다.
기업들이 그 업종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하고,그 결과 글로벌 기업들이 나올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는 주력분야나 업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빠른 길은 기존의 글로벌 기업들로 하여금 또다른 업종을 주력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기업이 커지는 것을 막고 있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은 출자총액제한 등 각종 규제의 덫에 걸려 있고,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이 덫에 빠지지 않으려 자산 5조원을 넘지 않으려 한다.
이런 현실에서 글로벌 기업이 어떻게 더 나올 수 있으며,또한 다양한 업종에 대한 투자를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강중국이니 뭐니 허구한 날 그림만 그리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답답하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