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초.금융감독위원장에서 자리를 옮긴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곧바로 금융지주회사법 제정에 착수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금융겸업화라는 세계적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정부는 우리은행 경남은행 한아름종금 등에 모두 8조5천억원의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2001년 4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켰다. 이어 신한금융지주(2001년10월) 동원금융지주(2003년1월) 등이 설립됐으며 하나은행도 준비중이다. 지금까지의 금융지주회사제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금융겸업화·대형화의 발판을 마련했다(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은행중심의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비은행 금융부문이 취약해졌고 전체 금융시장의 효율성이 약화됐다(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은행들의 문어발식 확장 현재 금융지주회사는 우리금융 신한금융 동원금융지주 등 세 곳이다. 은행중심의 지주회사인 우리금융과 신한지주의 자산은 지난 9월말 현재 각각 1백39조원,1백48조원에 이른다. 반면 증권이 주축이 된 동원금융지주의 자산은 6조원(한투증권 포함)으로 비교 대상이 못된다. 대투증권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는 하나은행도 지주회사를 준비 중이다. 자산 2백7조원인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틀은 갖추지 않았지만 보험사 투신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며 유니버설뱅킹 체제를 갖췄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역시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해 금융그룹화하고 있다. 한정태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대형 은행들은 일제히 수직계열화를 통해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제2금융권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1년여만에 은행의 저축성보험 판매비중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5대 증권사 가운데 LG투자증권 대우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 3개가 이미 은행계열로 편입됐다. 자산운용시장에서 은행계의 수탁고 비중은 40%에 달한다. 이같은 은행독주 현상은 △막대한 자본력 △높은 신인도 △합병을 통한 대형화 등이 서로 맞물린 결과다. 물론 증권업계의 신뢰도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지만 막대한 공적자금,은행중심의 금융정책 등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약인가 독인가 은행의 경쟁력만 놓고 볼 때는 금융지주회사의 성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금융연구원의 구본성 박사는 "우리금융지주는 우량회사로 탈바꿈했으며 신한지주의 성공적인 정착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금융전업그룹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민경제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지금과 같은 은행중심 일변도의 금융그룹화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은행과 증권·보험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지금처럼 은행중심으로 금융산업이 재편되면 2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고 전체 금융시장의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본시장이 미비한 상황에서 은행중심의 금융재편은 금융중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식시장은 선진시장에 비해 아직 왜소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중이 미국과 영국은 1백%가 넘는 반면 한국은 50%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달리 중견·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은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보다는 가계대출,국공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운용을 확대할 뿐이다. 4백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이 떠돌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금융계는 은행중심의 금융재편에 대한 대안으로 선진국처럼 제2금융권 중심의 금융지주회사가 등장해 은행권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연구원의 김우진 박사는 "산업자본에 속해 있는 비은행 금융회사들이 그룹에서 분리독립해 금융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연구원의 노희진 박사는 "국내증권사가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과 자산을 확충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 아래에서는 힘들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