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하던 날부터 편견을 실감했다.


6급 주사인 내 자리가 주사보 아래 놓여 있는 것이었다.


말로는 관행 때문이라나.


이후 2~3년이면 올라가는 자리에 앉는 데 5년씩이나 걸렸다.


1급 승진이 좌절됐을 때 차관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제가 남자보다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저는 오줌도 서서 눕니다"라고.'


2001년 여성 최초로 차관(노동부) 직에 오른 김송자씨의 고백이다.


남녀차별금지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미국에도 없는 정부 조직 '여성부'까지 가동되고 있는 오늘날 그의 얘기는 언뜻 '과거 다른 동네 특수상황'쯤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3자의 관점이 아닌 '소수자로서의 직장 여성'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상사의 불공정 논리에 휘둘려 코너에서 눈물짓기 쉽고 남자 동료들의 태클도 만만찮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표 생각이 든다면 신간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박성희 지음,황금가지)를 읽어볼 만하다.


신문사 논설위원인 저자의 회상이 정겨운 위안으로 다가온다.


'나는 빈주먹뿐이던 월남민의 맏딸로 태어났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밖에 없었다.


재수 시절 무작정 학원 사무실을 찾아가 공부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결혼하면 퇴직해야 하는 회사에 입사했을 땐 사람들 몰래 식을 올렸다.'


작은 무역회사 첫 취직,여성 잡지사 기자,실업자,경제단체 직원,신문사로 이어지는 저자의 25년 직장생활.짧지 않은 경험에서 나온 처세법은 개성이 톡톡 튄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것은 환상이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조용히 상사의 비위를 맞추라.자주 보고하고 아는 것도 묻고 경조사를 챙겨라.98퍼센트의 실력보다 2퍼센트의 서비스 정신이 인생의 성패를 가른다.


아부도 실력이다.''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마음을 꼭꼭 숨기고 적에게도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 지어라.눈총도 총이다.


자꾸 맞으면 죽는다.'


이 책은 회사 내 생존을 최고 가치로 부여하고 있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대명제 아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사소한 차이로 승부를 가르는' 경쟁력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조직의 생리와 경쟁 원리가 예리하게 해부돼 있음은 물론이다.


본문 사이사이 동서고금의 명언과 유명인들의 처세 원칙도 맛깔스럽게 소개돼 있다.


세상이 잘못됐고 기성 세대는 답답하고 그래서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직장인,특히 여성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책이다.


1백84쪽, 9천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