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한테 좀 미안한,양해의 말씀 하나 구하고 싶다… 이 비행기는 서울로 바로 못간다." 8일 오전 4시35분(한국시간)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항공 특별기에서 동승한 취재기자석 쪽으로 건너와 이렇게 불쑥 밝혔다. 국군 자이툰 사단 부대가 주둔 중인 전쟁터 이라크 아르빌로 간다는 것이었다. 이어 "그동안 비공개리에 행한 부대 배치가 완전히 끝났다"며 "장병들이 안착했기 때문에 연말을 기해 아무래도 가서 한번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또 장병들이 기왕 수고하는데 그게 효과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장병들과 아침밥을 같이 먹으며 격려하려 한다"고 말했다. "유럽순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문에 바로 뒤이어 뜻밖의 전격 발표에 순간 기내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비행기는 불과 30여분전 7일 오후 8시(파리시간) 샤를르 드 골 국제공항을 이륙,프랑스 상공에서 장거리 궤도를 잡고 있던 시점이었다. 기자들의 놀란 표정을 의식한듯 노 대통령은 "8일 도착한다고 기사들을 썼을텐데… 그 오보(誤報)는 국민이 다 양해하고 받아주지 않겠나"라며 "빨리 송고하고 싶겠지만 아르빌에서 돌아올 때까지 (보도자제를)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전에 시간 갖고 알려드리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보안을 유지해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가는 것이다"며 자세한 일정을 브리핑했다. 유럽순방 도중에 최종 확정된 자이툰방문 '동방계획'은 이처럼 철통 같은 보안속에 준비됐다. 노 대통령은 파리 방문에서 이례적으로 프랑스 상원의장 접견 일정을 현지에서 추가,이틀전 출발시간을 4시간 늦췄는데 이때 아르빌방문 작전 도상훈련이 최종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빌 공항의 시설이 상당히 뒤떨어져 주간(오전 7시∼오후 4시)에만 이착륙이 가능해 이 시간에 맞추도록 파리출발 시간을 늦췄다. 당초 경유지를 놓고 쿠웨이트와 터키가 함께 검토됐는데 외교절차 등 여러 상황이 종합고려돼 쿠웨이트로 정해졌다. 또 준비과정에서 미국 측과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기는 6시간30분 만인 8일 오전 4시30분(쿠웨이트시간,한국시간 오전10시30분) 쿠웨이트 무바라크 공항에 도착했다. 30분 뒤인 오전 5시 노 대통령은 미리 대기 중이던 한국공군의 C-130 두 대에 일부 제한된 취재진과 함께 아르빌로 향했다. 보좌진도 반기문 외교장관,권진호 보좌관,정우성 외교보좌관 등으로 최소화됐다. 쿠웨이트에서 아르빌까지는 8백30㎞,비행시간은 2시간20분.2시간 동안 자이툰 부대를 격려한 뒤 전광석화처럼 쿠웨이트로 되돌아왔다. 007작전을 방불케한 '동방계획'이 끝난 뒤 노 대통령은 경유 7시간30여분 만에 다시 대한항공 특별기로 갈아타고 서울로 향했다. 청와대측은 전투지역으로 이동 때문에 비행 중에야 방문사실을 발표했고,기내의 위성전화 사용금지를 당부하면서 언론보도도 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이륙할 때까지 자제해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남미순방 직후인 지난달 25일 김우식 비서실장과 권 보좌관,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불러 아르빌 방문 방침을 밝혔고 이 때부터 NSC사무처,경호실,합참작전본부,외교부 정책실 등의 고위 간부들이 망라된 극비 실무추진팀이 가동됐다. 이후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통일장관에게는 계획이 통보됐고 합참본부장이 이라크 다국적군 사령부에 알렸다. 아르빌(이라크)=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