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26일 의장 `성명'으로 한국 핵물질 실험 문제를 일단락 짓는 과정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관련 용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잘못 설명해 한때 언론 보도에 혼선이 빚어졌다. 핵안전조치 협정 등에 관한 위반 문제 논의가 이뤄지고 처리 결정권을 쥔 IAEA이사회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의장 요약이나 성명 ▲결의안 채택 ▲차기 이사회로 결정을 미루는 방안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유엔 안보리 회부를 포함한 결의안 채택과 차기 이사회로 결정을 연기하는 방안은 지난 25일 이사회 첫날 회의 결과 사실상 배제됐다. 남은 것은 26일 중에 의장이 이사국과 추가 협의해, 성명과 요약보고 가운데 어떤 형식을 택할 것이며 내용은 어느 수준으로 정리할 것이냐 여부였다. 그런데 25일을 전후해 외교부 당국자들의 설명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빈 현지의외교 관계자들은 의장의 결론문은 성명이든 요약 보고문이든 중요한 것이 아니며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또 "의장이 내는 소위 결론(conclusion) 문서의 제목이 성명(statement)이나 요약(summary)이 아니다. 문서 서두에 발표(state)한다거나 요약(summary)한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지 별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설명은 안보리 회부는 피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해할 측면이 있고, 실제문서 작성, 발표과정을 감안할 때 나름의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형식과 내용을 칼로 두부 자르듯 구별할 수는 없으나 의장 요약 보고서 보다는 성명이 한 단계 강도 높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요약보고를 희망한다"고 말해왔다. 과학기술부도 26일 공식 브리핑에서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설명하면서 의장성명보다는 약하고 우리가 가장 원했던 의장 요약으로 결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단의 고위 외교 관계자가 "나는 성명과 요약이 다르다고 설명한 적이 없다"고까지 강변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26일 의장 성명이 발표된 이후에 벌어졌다. 애초 의장 결론문(conclusion)이 우리말로 성명과 요약 중 어느 쪽이냐고 기자들이 묻자 우리측 대표인 최영진 외무차관은 "state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성명이다"고 명쾌하게 답변했다. 마감 시간에 쫓기던 기자들이 모두 흩어지며 `IAEA 의장 성명 채택' 제하의 기사를 전화로 부르거나 방송했다. 그런데 잠시 후 소수의 기자만 남아 있는 현장에 한 외교 당국자가 급하게 와 "사무국 유권해석으로는 `의장 요약'이라고 하니 기사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자는 서울로 급히 전화를 걸어 기사를 수정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역할을 분담해 확인한 결과는 달랐다. IAEA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용 상 큰 차이는 없지만 요약은 분명 아니며 성명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한 일본 특파원은 "일본 외교 당국은 성명과 요약의 중간 단계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다시 일부 언론사에서 기사 제목과 내용을 재수정하느라 인쇄 직전에 있던 윤전기를 멈추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비록 외부적 요인에 힘입은 바도 있으나 정부가 총력 외교전을 펼치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 안보리 회부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고 투명성 의혹도 큰 부분을씻어낼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우리 외교의 성과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일어난 용어 문제는 사소한 해프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정부 당국의 초기 대응 미흡과 이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 증폭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로 지적된다. 한편 과기부가 26일 브리핑에서 "의장이 성명이 아닌 요약으로 할 것임을 25일 이사회에서 밝혔다"고 설명한 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IAEA에 생소한 과기부 파견 관리가 "이사국들의 의견을 종합, `요약(summarize)하고' 추가 협의를 거쳐 내일 결론문을 내겠다"고 한 의장의 설명을 의장 `요약'(summary)과 혼동한 것을 과기부 고위 관계자가 그대로 공식 발표한 것이다. (빈=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