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연강판 공급 부족으로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키로 한 일본 닛산자동차가 포스코에 냉연강판 공급을 긴급 요청했다. 포스코로서는 닛산의 요청에 응할 경우 그 동안 공들여온 일본 자동차업계를 확실한 수요처로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국내 수급도 매우 빡빡해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닛산자동차는 냉연강판 공급 부족을 이유로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까지 5일간 일본 내 3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한·일 양국 자동차 및 가전 업체들은 닛산의 공장 가동 중단은 철강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인 만큼 이번 사태가 자칫 '철강 파동'의 전주곡이 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때마침 포스코와 일본 철강업체들이 내년 초 일부 고로의 보수작업에 들어가기로 결정,수급 불균형의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량 부족에 제철소 보수까지 일본 자동차업계가 철강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한·일 양국의 철강 수급이 매우 불안정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제철소의 고로 보수는 수요 업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일본 JFE스틸과 신일본제철은 내년 상반기 고로 보수를 위해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키로 했다. 포스코도 설비 보수를 위해 내년 3월 중순부터 냉연강판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광양제철소 2고로 가동을 2개월간 중단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이 기간 30만t가량 강판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며 이미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수요업체에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수급 불균형이 본격화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자동차 및 가전 업계는 이달 들어서만 냉연 강판의 국제 가격이 t당 50달러가량 올라 생산원가 상승 압박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일본의 경우 가전제품용 냉연강판의 시중가격이 최근 한 달간 t당 3천엔(4%) 상승하면서 전기아연도금 강판 등 다른 철강재의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때문에 자동차뿐만 아니라 냉장고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안정적인 생산은 물론 수익성에도 빨간 불이 켜지는 등 국내 산업계가 철강 대란의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량 확보 비상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현재 정몽구 회장이 일본 JFE스틸을 방문,전략적 제휴를 맺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20일치 조업물량에 해당하는 20만t가량의 강판 재고를 확보,조업에는 지장이 없지만 적정재고 30만t을 크게 밑돌고 있다. 특히 현대차는 내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가고 한국과 중국내 생산량도 올해보다 상향 조정,자동차 강판의 원활한 공급이 주요 경영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내년에도 국제적으로 냉연강판의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데다 주요 수입원인 일본제철소가 자국 업체 우선 공급 정책을 펼칠 경우 물량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삼성증권 김경중 기초산업팀장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아시아지역의 철강 수급이 더욱 빡빡해질 것"이라며 "중국 대만 일본에 이어 한국도 내년 초 철강재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고민 포스코는 닛산의 냉연강판 공급 요청이 사업 영역을 일본으로 본격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삼을 수 있다. 포스코는 그 동안 일본 자동차업계에 냉연강판을 연간 25만t 남짓 공급해왔으나 신일본제철 등의 견제로 물량을 늘리지 못했다. 포스코는 일본 자동차업계가 본격적으로 포스코 제품을 사용할 경우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일본 시장에 큰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포스코가 지금과 같은 수급 불균형 속에서 대일 수출 물량을 늘릴 경우 국내 기업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어서 쉽게 닛산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정태웅·이심기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