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재계는 개정안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열린우리당에 의해 단독처리되자 "당사자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개혁이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개혁은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 투자가 확대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투자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골몰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투자에 나서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재계는 그러나 국회 본회의 때까지 재계의 뜻이 개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편다는 방침이다. 재계는 18일 열린우리당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단독 처리한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4단체 회장 공동명의로 성명서를 내고 "정무위가 경제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4단체는 이 성명서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인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과연 개정 내용이 우리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잘살게 하는 개혁인지 의문"이라면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경제계 의견을 충분히 분석하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계가 반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대기업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이다. 재계는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경우 최근 전경련이 회장단 회의에서 5대 그룹만 규제할 것을 요구하는 중재안을 내놨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은 "출자총액 규제는 새로운 업종으로의 진출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등 다양한 투자를 저해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하지만 정부·여당의 의지가 완강해 중재안을 낸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재계의 마지노안을 거부한 데 대해 섭섭함을 나타냈다.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도 삼성전자 등 국내 핵심 우량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재계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개정안대로 금융 계열사 의결권이 2006년부터 3년에 걸쳐 매년 5%씩 축소돼 15%로 낮아지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일부의 의결권을 제한받아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54.7%에 달하고 상위 10개 기관투자가의 지분율이 21.9%인 상황에서 금융사 의결권을 15%까지로 제한하면 외국투자가들의 경영권 간섭이 크게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하기 위해선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확대하는 것 말고 뾰족한 방법이 없지만 이마저 상호출자제한에 묶여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을 재도입하는 것도 또 다른 규제 강화라며 기업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나온 제도로 비판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권을 활용하면 위법 행위를 충분히 제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직접 계좌추적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칫 조사권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