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 업체들로 구축된 클러스터(집적지)가 성공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각 구성원(업체)들이 위기의식과 목표를 공유하는 한편 자생적인 네트워킹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녹산조선기자재협동화단지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다. 녹산산업단지 내에 자리잡은 부산 조선기자재공업협동조합의 제2공동공장.용접 베어링 표면처리 등 각종 정밀부품 가공이 진행되는 곳이다. 지난 6월 문을 열어 이제 5개월가량 가동된 이 공장의 작업 물량은 인근 54개 업체로부터 주문받는다. 가공비는 일반공장보다 10% 이상 저렴하다. 이 공장에 있는 CNC선반,머시닝센터 등 첨단장비는 가격이 총 3억5천만∼4억원에 달한다. 가격이 비싼 반면 기계를 멈춰두는 시간이 길어 개별 중소기업들이 구입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공장 경영을 맡고 있는 박세철 녹산정공 사장은 "협동화단지 조합원들이 14억원을 공동 출자해 설립했다"며 "투자액과 운영비를 줄일 수 있는 게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합원사 대표는 "창원과 김해 등지로 외주를 주면 불량이 났을 경우 다시 수거해 재가공을 맡겨야 했는데 물류비와 납기면에서 이점이 많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녹산조선기자재협동화단지 사업은 89년 설립된 협동화단지 조성협의회 및 추진위원회가 92년 부산조선기자재공업협동조합으로 변신하면서 본격화됐다. 94년 협동조합은 부산시로부터 녹산단지 내 5만평(현재 8만4천평)을 배정받았다. 부산·경남지역에 밀집해 있던 중소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부지난을 겪으면서 협동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조선기자재는 선체부 블록에서 엔진 펌프 등 기관부품,앵커장치까지 종류가 많고 부피가 커 넓은 작업장을 필요로 한다. 95년부터 업체들이 입주를 시작해 현재 54개사가 단지 내 11개 블록에 모여들었다. 이중 2천9백평에는 조합 공동부지를 조성했다. 부지매입 및 건축,설비 등에 들어간 총 비용은 약 2천억원.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협동화자금 4백49억원을 지원받았다. 98년 완공된 건평 9백여평의 제1공동공장(강재표면처리 및 도장공정)은 첫번째 공동설비다. 최병국 부산조선기자재협동조합 상무는 "철구조물은 도장을 위한 표면처리 과정에서 공해물질이 발생해 공장 운영이 쉽지 않았다"고 공동공장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식당도 업체당 직원 수가 1백명 이하면 수지를 맞추기 힘들지만 일평균 2천명이 식사할 수 있는 공동 식당을 건설해 개별 업체들의 부담을 줄였다. 지난 6월에는 4백50평 규모의 제2공장과 공동주차장(1천3백20평),교육훈련센터가 완성됐다. 또 6천4백평 규모의 공동물류센터 건립을 통해 효율적인 납품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서종석 조합이사장은 "중복투자 절감액 1백억원,연간 외주가공비 절감액 35억원,식당 등 부대시설 투자절감액 45억원 등 획기적인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지난 7월 이후 4개월 동안 1천50명의 근로자가 전문교육을 받았고 원부자재 구매와 국내외 전시회 참가,해외시장 개척에도 공동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쟁업체를 포함해 동종 중소기업들이 주체가 돼 협동화단지를 이룬 경우는 조선강국인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사례"라고 덧붙였다. 부산=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