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리화'의 동주는 내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 두 가지를 깨트리게 만든 역할입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동건(24)이 종영 넉달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이처럼 말했다. 12월 1일 첫방송될 SBS TV 드라마 '유리화'(극본 박혜경, 연출 이창순)에서 그는 일본에 입양된 재벌 2세 한동주 역을 맡았다. 이동건은 영화 'B형 남자친구'를 촬영하면서 이 작품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파리의 연인'이 끝나고 난 후 '드라마는 당분간 하지 말자'와 '겹치기 출연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동주(일본에서는 유이치)가 "이걸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고 생각할만큼 매력적인 배역이었다는 것. 그 이유에 대해 "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기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상처나 아픔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내게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준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 배역이었기 때문"이란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다는 건 '파리의 연인'의 윤수혁과 닮아있지만 표현해야하는 범주가 다양하다. "동주는 변화무쌍하다. 정해진 틀이 없다. 굉장히 냉정하지만 따뜻하고, 특히 지수(김하늘)를 만나서는 뜨거운 감정을 갖는 남자가 된다. 그러는 한편 자라온 삶의 환경 때문에 오만하기도 하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동주는 다음에 드라마를 하면 이런 배역을 하고 싶다는 내 바람과 일치하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줬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나온 '유리화'의 대본 중에 '파리의 연인'때의 '이 안에 너 있다'와같은 심금을 울리는 대사가 혹시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건 아무도 모른다"였다. "100분의 1, 그 만큼 순간적으로 집중해야 할 호흡의 문제인 것 같다. 어떤 대사가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말이 되느냐, 느끼한 대사가 되느냐는 게. 사실 '이안에 너 있다'라는 대사를 봤을 때 '도대체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너무 유치한 것아니야'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장면까지 오는 동안 수혁이라는 캐릭터가 쌓아왔던감정이 한꺼번에 터졌고, 시청자들이 수혁의 감정에 몰입해줬기 때문에 감동을 느꼈던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드라마 '유리화'에서 동주는 고아원에서 지수, 기태(김성수)와 남매처럼 자라나지만 일본 재벌가에 입양된다. 12년이 지난 후 세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지수와의 사랑과 기태와의 우정에서 방황한다. 이동건은 "이 드라마는 올곧이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 될 것 같다"면서 " '파리의 연인'이 멜로 외에 혈육의 정, 가족 등 다른 굵은 가지가 있었다면 '유리화'는사랑 자체로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드라마다. 이 점 때문에 나도 그렇지만, 김하늘씨도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하늘이 파트너라는 점도 이 드라마를 출연하게 한 이유중 하나였다. 김하늘에 대해 "지금껏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와 좋은 이미지를 쌓아와 흠잡을 데 없는 선배 연기자"라고 평한 그는 '김하늘의 파트너는 모두 톱스타가 된다'는 속설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캐스팅된 후 그 말을 들었다"며 웃는다. 지난 7일 일본 고베에 도착한 후 9일 밤까지 꼬박 사흘 동안 1시간 밖에 잠을자지 못하고 연일 강행군이다. 이동 중에도 대본을 읽는 등 눈을 붙이지 않는다. 잠 을 못 자 힘들겠다고 인사처럼 건넸더니 "잠을 못 자 힘든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100%를 끌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다"는 진지한 대답을 했다. '낭랑 18세'와 '파리의 연인'으로 인해 "올해가 아마 내 인생 최고의 해가 될정도로 내가 갖고 싶은 걸 다 갖게 해준 한 해였다"고 말하는 이동건의 연기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는 더욱 신뢰감을 준다. (고베=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