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영화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영화는 '가족'(감독 이정철)이다. 기존 충무로의 시각으로는 흥행에 실패할 것 같던 이 작품은 예상을 뒤엎고 2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영화 평균치의 3분의2 수준인 17억1천만원의 순제작비를 투입한 '작은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 실적이다. 주인공인 주현과 수애의 스타 파워는 약했고 딸과 아버지의 화해를 다룬 이야기틀도 평범했으나 만만치 않은 관객을 끌어들인 것.제작자 황우현 튜브픽쳐스 대표(36)는 2년 전 대박을 터뜨린 '집으로…'에 이어 다시 한번 독특한 흥행감각을 과시했다. "'가족'은 사실 여성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를 다뤘습니다. '집으로…'가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면 '가족'은 아버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지요. 결코 흥행 코드가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갖고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다가 무려 일곱번이나 퇴짜를 맞은 뒤 가까스로 다른 작품과 패키지로 계약을 맺었다. "단순한 플롯의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세부적인 묘사에 충실했습니다. 딸을 대신해 아버지가 죽는 강력한 스토리를 배치해 가족과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도록 유도했지요. 또한 관객들의 관심사는 탤런트 수애의 스크린 데뷔 연기지 주현씨의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주현씨에게는 '튀는 연기'보다는 과묵한 아버지상을 요구했습니다. 이같은 제작 방침은 개봉 후 입소문을 탈 수 있도록 하려는 전략이었지요." 예상은 적중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너무 슬퍼" "아빠가 생각나" "수애의 연기가 좋아"라는 소감들을 쏟아냈다. 추석 2주 전 개봉됐던 '가족'은 추석 시즌을 관통한 후 두 달 가까이 롱런하며 지금도 지방의 일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마케팅비 20억원을 포함한 총 제작비는 37억원,순수익은 23억원으로 예상된다. 황 대표는 "마케팅비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경쟁이 치열한 추석 시즌에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털어놨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황 대표는 지난 94년 광고대행사에 입사한 뒤 99년 튜브엔터테인먼트를 거쳐 2000년 튜브픽쳐스를 설립했다. 그는 앞으로도 "독특한 색깔을 지닌 특징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