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4년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1천1백30원대로 내려 앉았다. 세계적인 달러 약세에 맞서 정부가 설정한 환율하락 저지선인 1천1백40원선이 4년만에 깨진 것이다. 정부는 엔.달러 환율 급락이라는 시장요인과 국정감사 등에서 제기된 과도한 시장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 앞에서 주춤한 모습이다. 인위적으로 버텨온 환율이 급락함에 따라 한국 경제를 홀로 지탱해온 수출마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적 달러 약세 원·달러환율은 지난 6월 이후 넉달간 1천1백50원대 공방을 매듭짓고 이달 8일 1천1백40원대에서 불과 10여일만에 1천1백30원대로 주저앉았다. 이달 중 고점인 6일(1천1백52원60전)에 비해선 17원 가량 하락한 셈이다. 이같은 환율하락은 달러당 1백9∼1백10엔을 유지했던 엔화환율이 25일 1백6엔대로 급락한 것이 주요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임박,미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가 또다시 테마로 등장하면서 형성된 글로벌 달러 약세의 여파다. 이와 함께 재정경제부의 환율방어 의지가 시들해진 것도 환율하락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9월이후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은 줄어드는 것 같은데 외환시장은 이미 당국의 개입에 길들여져 환율 급락에도 불구,달러 매물은 크게 쏟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당초 예상치를 훌쩍 넘겨 2백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올해 무역수지 흑자도 환율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하락 충격은 중소기업부터 외환시장에선 이같은 하락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주호 HSBC 이사는 "엔·달러환율에 비해 원·달러환율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며 "예상됐던 하락인데다 폭도 크지 않아 시장 자체에 주는 충격은 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그동안 '횡보 환율'에 익숙한 수출업체가 받을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환율하락세에도 외환당국의 환율방어 의지만 믿고 수출대금 결제를 미뤄왔던 중소기업들이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정부의 지속적인 시장개입이 환리스크 관리 필요성을 잊게해 수출 중소기업들은 '길잃은 미아'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고유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급속한 원화 절상(환율 하락)은 경공업과 1차상품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들 업체가 고유가나 임금인상 요구를 바로 수출가격에 반영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나 연구기관 일각에서는 환율하락으로 수입물가가 내리면 물가 안정과 설비투자 증가 등 긍정적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가 지속되고 외환시장의 불확실성마저 커지면 큰 효과를 내긴 힘들어 보인다. ◆추가적인 급락 가능성은 낮아 시장 관계자들은 일단 1천1백40원선이 깨진 만큼 1천1백30원선도 위협할 수 있지만 급락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문한근 한은 외환시장팀 과장은 "원화 환율절상이 기조로 정착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 대선이란 변수가 제거되면 미국 경제도 안정을 찾게될 전망이고,한국도 올해 봄과는 달리 자체 절상요인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진우 농협선물 부장도 "과거와 달리 이번 달러 약세현상은 투기세력의 개입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며 "달러 약세라는 기조를 확인하는데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