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내서 설비투자를 했더니 재무제표가 나빠졌다고 무턱대고 대출금의 20%를 갚으랍니다." (광주 하남단지 플라스틱사출업체) "최저임금 인상으로 지난달부터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주는 임금이 15%가량 올랐습니다. 매출은 그대로인데 매년 인건비만 늘어나니.."(울산 외동농공단지 자동차부품업체) "현장인력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일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청년실업이니 구직난이니 하는 소리를 하는지.."(광주 도색.도장전문업체) 광주·울산공단에 있는 일선 중소기업 사장들이 현장을 찾은 기협중앙회 직원들에게 털어놓는 하소연들이다. 기협중앙회는 지난 13일부터 2주간 울산과 광주에 있는 중소업체 1천여곳을 방문,실태조사를 벌였다. 올들어 중소기업종합대책을 비롯해 수많은 중소기업 관련대책이 나왔고 정부관계자들이 은행에 중소기업대출을 늘리라고 수없이 종용했지만 현장에선 어렵다는 얘기가 많아 직접 현장을 다녀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자동차 조선 등 수출이 잘 되는 업종의 대기업 협력업체들은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인들이 자금조달 곤란,인건비 상승,인력확보난,원자재난 등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더이상 중소기업을 못해 먹겠다"든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올 만큼 중소기업 현장은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고 절박한 상황이다. ◆채산성 악화=내수 침체로 중소제조업의 공장가동률은 지난 8월까지 19개월 연속 60%대에 머물러 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매출은 정체 또는 감소하는 데 비해 원자재 가격이나 인건비 상승 등으로 비용은 증가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수익구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광주에 있는 업소용 싱크대 수출업체인 신보의 김경배 팀장은 "2002년에 kg당 2천1백원하던 스테인리스강 가격이 현재 3천4백원까지 올랐지만 제품단가에는 거의 반영하지 못해 수익성이 나빠졌다"며 "올해 공장을 이전해 설비를 늘리려던 계획은 전면 포기하고 현상유지에 급급하다"고 전했다. 울산 자동차부품업체 Y사의 김 모 이사는 "지난달부터 최저 시급이 2천5백10원에서 2천8백40원으로 오르면서 외국인근로자에게 주는 임금이 15%가량 올랐다"며 "몇년째 매출이나 납품가격은 정체상태인 데 해마다 임금은 10%이상씩 더 줘야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금난 심각=전반적인 판매 부진으로 어음결제가 많아지고 결제기간도 길어지면서 자금회전에 고충을 겪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기협조사에 따르면 올 3분기 중소기업들의 어음판매대금 회수기일은 평균 1백35.3일로 지난해 1분기(1백20.1일)에 비해 15.2일이나 길어졌다. 광주 K사 김 모 부장은 "3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던 업체도 요즘은 4개월이상짜리를 내준다"며 "은행에서 어음할인받기가 쉽지 않아 단기자금 확보를 위해 사채시장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지점장 전결한도 축소,대출심사 강화 및 담보인정비율 축소 등으로 신규 대출은커녕 기존 대출금 회수조치로 인해 은행돈을 갖다 쓰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광학렌즈업체인 에이지광학의 정인섭 과장은 "휴대폰렌즈 설비투자를 위해 시설자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은행들의 보수적인 운용으로 헛걸음만 쳤다"며 "제품의 특성상 투자시기를 놓치면 신규사업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데 큰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인력확보 곤란=중소기업들의 고질적인 인력난도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다.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로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채용하더라도 몇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이직하는 것이 보통이다. 광주 신화이디테크 현원준 총무팀장은 "1주일을 참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며 "가끔 구직자로부터 전화가 와도 임금과 주5일제 시행여부를 묻고는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놨다. 광주=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