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이건희 삼성회장의 '세상흐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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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삼성의 소프트 경쟁력을 높인다."
이건희 삼성 회장(62)이 젊은 취향의 각종 영상물을 부쩍 자주 접하고 있다.
이 회장이 영화 마니아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온 사실.
그러나 요즘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전 TV 드라마까지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변에선 이 회장이 영화와 드라마를 자주 접하는 이유를 "소프트 경쟁력 강화"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일반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 회장으로선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외 대중문화의 흐름과 젊은 고객들의 예민한 감성을 포착하는 데 이 만큼 훌륭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소프트 경쟁력이 디지털 경제전쟁 시대의 승패를 가름하는 핵심요소"라며 각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소프트 경쟁력의 바탕이 되는 문화와 고객의 니즈(needs) 변화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22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올들어 공전의 히트를 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올드보이' 등 국산영화는 물론 '반지의 제왕' '트로이' 등 해외 대형 신작들을 모두 관람했다.
장소도 구태여 자택만을 고집하지 않고 종종 일반 극장에 들러 최신작을 감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자주 찾는 영화관은 서울 강남의 코엑스몰 메가박스.
극장에서 이 회장을 알아본 관람객들이 사인 공세를 펼치기도 하지만 그다지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젊은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수행원들의 전언이다.
일부 영화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과 부부 동반으로 관람하기도 했으며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도 가끔 동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이 회장만큼 영화를 많이 본 기업인도 없을 것"이라며 "특히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 등이 삼성전자의 주력제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젊은이들의 취향과 감성을 알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측근들에게 특유의 영화 감상법도 소개한다고 한다.
가끔 주연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조연의 입장에서 보라는 것.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영화의 흐름과 스토리를 조망할 수 있게 돼 장면 하나 하나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회장은 '트렌디 드라마(감성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도시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로 일컬어지는 TV 프로그램들도 꾸준히 시청하고 있다.
저녁 시간대 드라마는 물론 주부층을 대상으로 한 아침 드라마들도 즐겨 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은 해외출장 때문에 드라마 시청이 불가능할 경우 국내에서 직접 공수해온 비디오 테이프나 DVD를 통해 '밀린 드라마'들을 연속 시청하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지난 8월 아테네 올림픽 참석과 동유럽 공장 순방 때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휴대폰 디자인과 유럽 현지 메이커들의 휴대폰 디자인을 꼼꼼하게 비교했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얼마전 임직원들에게 추석 선물로 모 방송사의 건강프로그램을 DVD에 담아 제공한 것도 잦은 TV 시청과 무관하지 않다"며 "고급 문화에도 조예가 깊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식견 역시 상당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