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이 나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지만 천국도 이익이 없으면 외면하는 것이 장사꾼이라고들 한다. 이 말의 참뜻은 결코 장사꾼을 폄하하려는 데 있지 않다. 장사꾼의 본질을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으로 가리키면서 동시에 상인의 정신과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있다. 논픽션 작가 홍하상씨가 쓴 '개성상인'(국일미디어)은 흔히 송상(松商) 송방(松房)이라 불리던 개성의 상업세력에 뿌리를 둔 '개성상인'의 정신을 오늘의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중국의 닝보 상인,일본의 오사카 상인과 견주어 한국을 대표하는 상인상으로 개성 상인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 유구한 상인정신의 뿌리와 그 현대적 의미를 고찰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주요 기업을 이끌고 있는 개성상인 출신 경영자들의 경영철학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전재준 삼정펄프 회장,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임광정 한국화장품 명예회장,이수영 동양화학 회장,서경배 태평양 대표,윤재철 한국후지쯔 대표,이은선 한국야쿠르트 전 대표 등 18명이 주인공이다. 1천년 전 동북아의 국제적 상업도시이던 개성을 근거지로 형성된 이 상인정신은 독특한 경영수업 시스템인 '차인제(差人制) 인사수습제도'와 서양보다 2백년 앞섰다는 복식부기 회계장부인 '사개치부법(四介置簿法)' 등 나름의 독특한 전통을 통해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기업정신은 '무차입경영''신뢰경영''한우물경영'으로 요약된다. 고학력 전문경영인이 즐비한 이 첨단 정보산업사회에 저자가 1천년이 넘은 시간 저편의 장사꾼들을 끌어와 그 정신의 이력과 물목을 조목조목 펼치는 까닭은 자명하다. 소위 'IMF 금융위기'와 최근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그들이 놀라운 경영실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예에서 볼 수 있듯 개성 상인의 기업정신이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동안 저술을 통해 한국 경제와 기업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그 저작의 근저에 흐르는 일관된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경제는 정신이다'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와 경제인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이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지 기대하며 깊어가는 가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3백44쪽,1만3천원. 윤용만 인천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