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1번지' 강남이 흔들린다] "파출부 일감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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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있는' 집은 꿈쩍도 않는데,중상층 쪽이 완전히 갔어요."
서울 강남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근처의 'J소개소'에서 만난 변순옥씨(55). 10년 파출부(가사도우미) 경력의 그는 요즘 공치는 날이 절반이다.
지난주와 이번주에 걸쳐 번 돈이 고작 10만원가량.그는 "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웬만한 가사일로는 파출부를 부르지 않는 주부들이 빠르게 느는 추세"라며 한숨지었다.
강남 소비경제가 휘청이면서 이곳에 기대 생계를 이어온 서민들의 고통도 함께 커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도배 및 이삿짐센터 인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일자리를 잃었고 최근에는 유흥주점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대리운전 및 콜택시 기사 등이 고통을 받고 있다.
분식점 등 소규모 상점 주인들도 야간 손님이 줄자 임대료 걱정이 태산이다.
요즘 파출부와 청소용역부 건설잡부 등을 수요자와 연결시켜주는 강남지역 직업소개소에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
삼성도우미의 권만호 사장(58·송파구 가락동)은 아예 전업을 고려 중이다.
그는 "파출부뿐 아니라 인테리어,청소용역,건설잡부 등 경기와 밀접한 업종으로 등록한 일꾼들이 모두 놀고 있는 형편"이라며 "지난해 부동산 거래 규제가 시작된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주부 A씨(39)도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아이들 학원비도 벌고 생활비도 보탤 겸 2년째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6∼7시간 일하면 5만∼6만원은 손에 쥘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 중앙시장 앞에서 조그만 갈비집을 운영하는 이모씨(40·여).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매상이 40만~50만원 수준 이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10만원 벌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육류 등 음식 재료를 대량으로 들여올 때는 '일수 대출'로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곤 한다.
이씨는 "가게 보증금으로 대출을 갚으려고 시세보다 싸게 가게를 내놔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처럼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강남지역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대부업체와 상호저축은행 등도 비상이다.
식당 미용실 문구점 등에 빌려준 무담보 신용대출금 회수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는 것.예금보험공사가 대출 연체율이 높은 일부 상호저축은행들을 중점 감시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제도권 금융회사들도 강남지역 영세 상인에 대한 추가 또는 신규 대출을 일제히 중단하고 있다.
원룸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는 퇴직자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매한가지다.
역삼동에서 다세대 원룸주택을 임대 중인 최모씨(62)는 "얼마 전 세들어 살던 아가씨 두 명이 방을 뺐는데 부동산 사무소에 물어보니 신규 임대가 쉽지 않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룸주택을 짓느라 퇴직금을 몽땅 바쳤을 뿐 아니라 은행 빚을 2억원 넘게 얻었다"며 "임대가 안되면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오재경 포유부동산(강남구 역삼동) 실장은 "유흥주점 아가씨들이 방을 빼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재임대는 거의 안된다"며 "은행 빚이 많은 노년층 임대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싸게라도 세를 놔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수언·이관우·정인설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