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경기 낙관론을 접고 "경기 하향세"를 공식 시인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하강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작년 4.4분기를 정점으로 계속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다운 회복없이 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은이나 KDI,LG경제연구원 등 민.관 연구기관들은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화폐단위 절하(리디노미네이션) 논란에 대해 박 총재는 "경기 물가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물가도 문제,경기도 문제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를 동결한 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박 총재의 표정과 말투는 예전과 사뭇 달랐다. 박 총재는 "경기가 하향세이고 내수 침체는 계속되며 건설 투자 고용 모두 저조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기낙관론을 뒷받침한 지표들마저 기대를 저버렸음을 시인했다. 지난달 콜금리 인하때 '물가보다 경기'라고 강조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물가도 문제,경기도 문제'로 후퇴한 것이다. 이날 발표된 통계청의 소비자 전망조사 결과도 외환위기 수준보다 나을 게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다. 특히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는 분위기에선 내수회복을 낙관할 근거가 희박해졌다. 월 4백만원 이상 소득자의 소비자기대지수는 91.0으로 통계청이 소득별 기대지수를 내기 시작한 2002년1월 이후 가장 낮았다. 여기에 물가는 갈수록 큰 부담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박 총재는 "올해 급등한 유가가 내년 봄으로 (부담이)전가되므로 내년 상반기 물가가 올해보다 더 걱정된다"며 "경기와 물가 리스크는 5 대 5"라고 우려했다. ◆회복다운 회복 없이 하강 KDI는 그동안 지표를 놓고 볼 때 경기는 회복국면에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이날 내놓은 월간경제동향 보고서에선 "서비스생산 부진 등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및 선행지수 등 경기관련 지표들도 4개월 연속 하락해 경기가 완만히 하강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반기 들어 예상한 대로 수출은 둔화되는 반면 좋아질 것으로 본 내수는 예상대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LG경제연구원도 지난 상반기를 정점으로 경기가 하강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회복다운 회복 없이 경기가 다시 하락하고 있으며 이 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내수부진은 가계부채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어 내년에는 한자릿수로 점쳐지는 수출 증가율 둔화를 상쇄할만큼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김용준·김동윤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