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지속된 국제유가의 고공비행으로 물가상승 압력 등 국내 경제 전반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정부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국제유가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고유가가 구조적으로 장기화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혼잡으로 인한 에너지 낭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내년부터 공공기관에 탄력근무제(출·퇴근 시간 자율조정)를 도입키로 하는 등 온갖 묘책을 짜내고 있지만 근본적인 고유가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물가방어의 마지막 수단으로 꼽히는 교통세 등 유류세 인하 '카드'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섣불리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정부는 국제유가가 내리기만 기다리는 천수답식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셈이다. ◆되풀이되는 미봉책 정부는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하반기부터 배럴당 26∼28달러의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당초 장밋빛 전망과 달리 배럴당 40달러대까지 치솟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제유가는 이제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논리보다는 국제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양상을 보여 가격 예측이 쉽지 않다"며 고유가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는 고유가 상황 지속이 기정사실화된 마당에 석유제품 내국세 인하 등 단기적인 대증요법보다는 대체에너지 보급,해외 자원개발 확대 등 중·장기적인 에너지정책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유가급등으로 인한 소비침체와 물가상승 압력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같은 중·장기 대책이 당장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 의문이다. 특히 그동안 유가가 출렁거릴 때마다 단골메뉴로 쏟아졌던 각종 에너지 정책과 에너지분야의 '반짝' 예산편성이 유가가 잠잠해지면 어김없이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세워놓은 유가 대책이 제대로 시행될 지도 미지수다. ◆유류세 인하에는 난색 재계는 물론 민간 연구기관들은 고유가로 인한 물가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휘발유 등에 붙는 유류세 인하를 제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휘발유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와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 유류세를 ℓ당 10원 내려봤자 석유제품가격 안정은커녕 세수감소(연간 6천억원)라는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효과는 거두기 어렵다"며 "정치권의 요구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정치논리에 이끌려 유류세를 인하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극심한 내수 침체에 고유가 변수가 겹쳐 경제에 직격탄을 맞은 2차 오일쇼크 때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고유가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장치는 결국 내수밖에 없다"며 "에너지 절약과 같은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책보다는 내국세 인하와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를 통한 적극적인 내수 방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