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법(稅法)개정은 정부가 주도해왔던 그동안의 관행과는 달리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제시한 감세(減稅)안을 정부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부가 만든 개정안을 집권 여당이 동의해주는 것이 아니라,열린우리당이 제안한 것을 정부가 받아들이는 쪽으로 당.정이 합의했다는 것은 17대 국회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정부 세법개정안(案)'이 세수 감소를 우려해 세금 감면 혜택을 최소화한 것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안(案)'은 대폭적인 세율 인하를 담고 있어 이들 두 안을 섞는데 따른 적자재정 확대 등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세수 유지'와 '경기 부양'의 갈등 정부가 1일 발표한 세법 개정안은 세수 감소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일부 중산·서민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재정경제부는 이날 세법 개정안에서 "재정지출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 요구도 커지고 있다"며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조세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경부는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근로소득 표준공제'를 40만원 늘리고 직업훈련 비용을 소득공제하는 수준에서 서민층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책은 대부분 발표된 것들이고,일부 조항은 당초 발표한 것에서 후퇴한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세수를 유지하는 데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당·정이 이날 합의한 열린우리당 개정안은 △근로·자영업자 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 △이자·배당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 △특별소비세 9월 말께 폐지 등 경기부양 성격이 매우 강한 '적극적인 감세정책'이다.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세입 예산을 짜야 한다'는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내년 세입 차질 우려 소득이 늘어날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율 체계로 인해 세금은 통상적으로 물가를 포함한 성장률(내년 8% 안팎)보다 1∼2%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내년 국세 수입은 올해 예상액(1백22조1천억원)보다 10조원 정도 많아야 정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하되고 고용창출형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세제 지원책으로 2조∼3조원의 세수 감소(법인세율 인하분 6천억원,기업세제 지원 2조원 안팎)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다 열린우리당의 감세안을 포함할 경우 △소득세 약 1조원 △특별소비세 약 4천억원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 6천억원 등 2조원의 세금 수입이 추가로 줄어든다. 열린우리당은 내년 예산편성 규모를 1백32조5천억원으로 짜면서 이 중 5조5천억원을 적자국채로 메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정부자산 매각 등을 포함한 정부의 세외(稅外)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예산을 운용하려면 적자국채 발행분을 제외한 나머지 1백27조원은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경기 회복이 지연돼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경우 세수가 줄어들고,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