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시범단지에 펜티엄Ⅲ급 이상의 컴퓨터를 포함한 '전략물자'의 제한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의 신경전이 날카로운 가운데북한이 이미 2002년부터 펜티엄Ⅳ 컴퓨터를 대량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 언론인 올가 말리체바(47.여)는 그의 책 '김정일과 왈츠를'에서 "2002년북한은 펜티엄Ⅳ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으며, 평양의 한 가전제품 공장을 방문해 (이를)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2년 700명의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1만4천대의 펜티엄급 컴퓨터를팔았다"며 "공장은 1986년부터 수만 대의 컴퓨터를 생산해 절반 정도를 독일로 수출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펜티엄 Ⅳ급 컴퓨터를 생산한다는 사실은 지난해 3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서도 보도된 적이 있다.

당시 조선신보는 북한의 전자제품 개발업체가 2002년 9월 중국의 난징팬더전자집단유한회사와 합작해 펜티엄Ⅳ 컴퓨터를 제작, 시판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코트라(KOTRA)도 지난해 8월 북한 국제무역촉진위원회의 자료를 인용, 북한의전자제품 개발업체 `아침'과 난징팬더사가 펜티엄 Ⅳ급 컴퓨터 3종을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자가 방문한 공장은 바로 이 북ㆍ중 합작회사로 추정된다.

한편 오는 9월부터 개성공단에 입주할 예정인 15개 기업은 북한에서 펜티엄Ⅳ급컴퓨터를 대량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반입을 제한하는 것은 기업활동 자체를 가로막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펜티엄Ⅳ 수준의 컴퓨터라야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통제법과 바세나르 협정 등은 북한을 '위험국가'로 분류, 대량파괴무기와 그 관련 물자를 입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개성공단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의 제한규정에 따르면 컴퓨터뿐 아니라 각종 금속기계, 레이저 장비, 첨단소재,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 설비 등도 반출금지 품목에 포함된다.

한국은 바세나르 협정 등 각종 국제수출통제제도 및 국제협력체제에 가입하고있으며, 오는 27일 무역협회 산하에 '전략물자정보센터'(SIIC)를 설립해 전략물자와기술의 해외수출 및 유출 방지업무를 전담케 할 예정이다.

통일연구원의 최수영 통일학술정보센터 소장은 25일 "북한은 바세나르 협약 등에 가입하지 않은 중국과 합작을 통해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다"며 "개성공단을 북핵문제와 연계하려는 미국과 강경일변도로 맞서고 있는 북한이 변화된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전략물자'를 둘러싼 모순과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우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전략물자 제한은 대부분의 물자에 대해적용할 수 있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식의 규정"이라며 "한국 정부의 부처 간 의견조율과 미국 상무부에 대한 설득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전략물자 제한' 정책과 마찰을 피하면서 필요물품을 개성공단에반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