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19일 은행장들과 가진 상견례에서 "지금은 금융이 실물을 리드할 때"라고 강조한 것은 그동안 은행들의 '나홀로 성장'을 허용해온 기존 금융정책 틀을 바꿔 나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부실은행을 외국계 자본에 넘겨 대형화하고 건전성을 높이도록 하는 과정에서 은행들의 '독주'가 가속화돼온 것과 관련,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강력하게 주문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게 금융계의 해석이다.

윤 위원장은 또 내년 4월로 예정된 2차 방카슈랑스(은행에서 자동차보험 판매) 도입계획도 신중히 추진할 것임을 밝혀 은행 위주로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금융산업 개편 드라이브의 속도 조절에도 나설 것인지 관심을 모은다.

◆ "은행들 제 역할 하라"

윤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은행이 가계대출 중소기업 신용불량자 문제 등을 풀어가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수익경영에 치중해 대출을 무작정 회수하는 것에 대한 경계 차원의 언급"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예금자들의 돈을 모아 기업이나 가계에 적절히 대출해 주는 본연의 자금중개 기능 보다는 국내외 유가증권 투자 등을 통한 수익성 제고에 지나치게 치중해온 것 아니냐는 질책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은행들의 총자산은 2001년말 8백30조원에서 올 3월 1천1백40조원 수준으로 3백10조원이나 늘어난 반면, 원화 및 외화 대출금을 합친 대출금 총액은 3백83조원에서 5백93조원으로 2백10조원가량 증가하는데 그쳤다.

대신 남은 자금으로 안전자산을 운용하는데 주력, 1백조원이 넘는 돈을 채권에만 투입해 왔다.

은행들은 또 초(超)저금리 상황에서 예금금리는 많이 내리고 대출금리는 덜 내리는 방식으로 예대마진을 확대, 이윤을 지나치게 늘려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평균 수신금리가 0.86%포인트나 하락한 지난 2002년 말부터 올 6월 말까지 은행의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은 1.89%포인트에서 2.23%포인트로 확대됐다.

덕분에 은행들은 올 상반기 순익 합계액이 3조5천여억원으로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금감원은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배당확대에만 치중하는데 대해서도 경고 사인을 보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순이익을 대손충당금이나 유보금 등으로 금감원 기준 이상 쌓아둘 경우 경영평가에서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은행독주체제 견제

금감위 관계자는 은행 위주로 추진돼 온 금융산업 재편계획에도 일정한 궤도 수정과 속도 조절이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지수연동 금융상품인 주가지수연동예금(ELD)이나 주가지수연동채권(ELS) 등을 증권사나 투신사보다는 은행에 먼저 허용함으로써 은행의 경쟁력을 높여줬음에도 은행들이 기업 대출 등 실물경제에 기대만큼의 기여를 못하고 있는데 대한 감독당국 차원의 '반성'도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은행에 집중돼 있는 시중자금을 제2금융권으로 돌리고, 이 중 일부를 주식시장으로 끌고 옴으로써 주식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금융정책의 중심이 재정경제부에서 금감위로 옮겨지면 이같은 정책이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