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2일 콜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내수경기를 활성화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이는 한국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고 여겨지는 한계금리 수준까지 낮아져 돈을 풀고 금리를 인하해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원인과 대책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낮아지면 경기가 좋아지게 마련이다.

싼 이자 덕에 자금을 빌리는 부담이 줄어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돈을 빌려 집을 장만하거나 할부로 물건을 구입하려는 수요도 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이자율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 현금을 보유하려고 한다.

향후 경기상황이 불투명할 때도 소비나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같은 유동성 함정 구간에서는 금리 인하보다는 세금 감면, 정부 지출(재정) 확대 등과 같은 재정정책이 경기 부양 효과가 더 크다는게 케인스의 주장이다.

지난 90년대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 경제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일본은 국내 콜금리에 해당하는 공정할인율을 0%대로 끌어내렸지만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고 풀린 돈은 금융권 내에서만 맴도는 상태가 지속됐다.

국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이 일본형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은 한국경제도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90년대 일본과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소비와 설비투자 부진 등은 장기불황 초기 일본과 닮은 점이지만 부동산 가격의 거품 규모나 금융회사의 건전성 등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이유에서다.

또 당시 일본은 산업 구조 등이 성숙 돼 국내부문의 성장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장기침체에 들어간 반면 한국은 사회간접시설 지방도시 등 투자해야 할 부문이 많아 성장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차이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