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넘쳐나는 현금으로 고민에 빠졌다.

경기회복으로 보유현금은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미국 중산층의 삶의 질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중산층 대부분은 맞벌이를 하고 있으며 이들의 근로시간은 늘고 있지만 재정적 안정은 오히려 열악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 "미국 연방중앙은행 조사 결과 미국 기업들(금융업 제외)은 지난해말 현재 총 9천2백5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러한 보유현금 규모는 총 자산의 4.6%로 지난 63년 이후 41년 만에 최대치다.

◆기업들,돈이 넘쳐난다=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확보해 놓은 현금은 무려 5백64억달러에 달한다.

휴렛팩커드(1백50억달러),인텔(1백31억달러) 등 다른 정보기술(IT) 기업도 사상 유례가 없는 거액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IBM도 지난해 4억3천만달러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고 배당금을 13%나 늘렸음에도 불구,여전히 총 자산의 8.2%에 해당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사내 보유현금이 늘어난 것은 기업들이 기록적인 순이익을 누리면서도 불투명한 향후 전망을 이유로 신규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고유가 테러위협 인플레압력 등 불안 요소들을 감안해 지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위기에 대비'하려는 모습이다.

특히 반독점법 소송 등에 휘말려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믿을 곳은 현금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영진이 돈을 굴리지 않고 마냥 깔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돈을 굴려 수익을 창출하라는 투자자들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때문에 기업들은 보유현금을 M&A·배당·자사주 매입 등에서는 적극 활용할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고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전했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올 상반기 지난해보다 70% 증가한 3천2백90억달러 규모의 M&A를 발표했으며 이 중 절반에 해당되는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S&P500 기업들의 올 상반기 배당금은 전년보다 15%나 늘었고 MS의 경우 이달 중으로 4백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산층은 갈수록 힘들어=기업들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미국 중산층의 삶의 질은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경제정책연구소의 자레드 번스타인 이코노미스트는 "근로자들은 점점 더 긴 시간을 일해야 하지만 임금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육비 건강관리비 등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부모 모두가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 혜택이 점점 줄어들어 노후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 때문에 중산층 가정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다고 번스타인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60년 부모 중 한 사람이 하루종일 집에 머물렀던 비율은 70%였던 데 비해 요즘은 부모 모두 일하는 비율이 70%에 육박하고 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