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행들이 정부와 국유기업의 사실상 `결제창구' 역할만 하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금융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한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9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저널은 중국 금융계의 이같은 변신 노력이 중국 경제가 그간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향상으로 업그레이드될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외환시장 규제 등 걸림돌이 여전해 성공 여부가 아직은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저널은 중국은행과 건설은행 및 농업은행 등 중국의 4대 은행들이 당국 주도로 대대적인 변신 단계에 진입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들 은행이 이를 계기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은행은 그동안 공산당 지도부의 지시로 국유기업에 대출하는 결제창구 역할을 함으로써 부실채권이 쌓여도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었으나 이제는 조금씩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은행 간부는 저널에 "그동안은 100% 당국의 하부 조직이었으나 명실상부한 시중은행으로 변모하기 위한 과정에 이미 진입했다"면서 "국익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수익을 내기위한 목표를 설정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널은 중국에서 가장 큰 시중은행인 중국은행의 이같은 변신이 중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특히 당국이 아닌 은행들이 부실 국유기업들에 자생력을 높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변수로도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대표적 금융그룹인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CITI) 간부는 저널에 중국 금융감독관리위원회가 "상용대출 한도를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조항을 만들었다"면서 "대출시 신용을 더 엄격하게 평가하면서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저널은 중국 은행들이 비록 조심스럽기는 하나 지방정부와 국유기업과의 관계도 `제대로' 정립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움직임은 지방정부가 최근까지 은행의 대출을 사실상 통제하고 심지어 은행 직원들의 봉급까지도 정해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데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저널은 강조했다.

중국은행 간부는 "이것은 엄청난 변화"라면서 "예전에는 대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은행 간부들이 지방정부 관리들을 찾아갔으나 이제는 그들이 와야한다"고 덧붙였다.

저널은 이런 변화 속에 금융기관간에 중국 사상 처음으로 경쟁 시스템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형 은행들과 중소 금융기관간에 시장 논리에 기반을 둔 서비스 경쟁까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2군' 은행 간부는 저널에 "이제 우리는 독자적인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당국이 설사 대출 지침을 바꾸더라도 우리는 대형은행들과는 달리 당장 대출을 회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형 금융기관들이 이런 식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 것이란 얘기다.

금융기관들의 이같은 변신이 용이하지만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이 외환시장을 여전히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저널은 강조했다.

수출이 날로 늘어나면서 유입되는 외환 규모는 커지지만 태환이 쉽지 않은데다 정책 금융으로 대출 이자도 낮게 묶이면서 은행 경영이 어려우며 여기에 부실채권까지 증가해왔다는 것이다.

온라인 금융사인 당당닷컴을 운영하는 페기 유는 저널에 "정책 금융 때문에 중국에서 기채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이 금융시장을 왜곡시키는 요인"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누가 금융 부담을 줄이기 위한 효율성에 목을 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은행들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 과거와는 달리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에 대한 대출과 모기지 뱅킹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저널은 지적했다.

한 예로 중국건설은행의 경우 지난해 이 부문이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까지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CITI 간부는 "개인 대출에 은행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올해도 그 비중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기업 대출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추세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중국 은행들의 이같은 변신 노력에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중국과 거래가 많은 홍콩 소재 무역회사 노블 그룹의 해리 반가 부회장은 저널에 "중국 금융기관은 여전히 당국에 예속돼있다"면서 "지난 4월 당국이 경기 과열을 우려해 대출에 신중을 기하도록 지시한 후 심지어 수출신용장을 개설하지 못해 한때 대중국비즈니스가 올스톱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