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밑을 왜 거북이가 받치고 있을까?-창조의 여신 여와는 구멍난 하늘을 메우기 위해 거북이 다리를 잘라 세계를 받쳤다.

그래서 비석을 받치고 있는 거북은 안정성과 영원성을 상징한다.'

'운우지정을 맺는다는 말의 기원은?-무산신녀가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 비가 되어 내렸는데 초회왕과 짧은 사랑을 나눴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놓지 않는 이유는?-동이계 영웅 예가 복숭아 몽둥이로 맞아죽었는데 귀신의 우두머리가 된 뒤에도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정재서 지음,황금부엉이)는 이처럼 고대 신화의 세계를 일상생활 속의 우리문화로 되비추는 책이다.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인 저자는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맛깔스런 입담으로 박제된 동양 신화를 오늘 우리 삶의 현장으로 되살려냈다.

저자는 '그동안 동양의 신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데도 우리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며 서양 신화의 반대편에서 오랫동안 군림했던 동양의 신들을 찾아나선다.

제우스의 권능에 필적할 만한 황제,헤라처럼 여신들을 지배했던 여와,아프로디테와는 또다른 우아한 매력의 소유자 서왕모….

그의 말대로 신화는 문화의 원형이다.

서양의 맥도날드가 전세계인의 입맛을 통일하듯 휩쓸고 있지만 동양의 김치와 초밥도 훌륭한 음식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획일화되는 '상상력의 제국주의'를 넘어 동양적인 것,우리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라는 편견에 빠지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신화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한 뒤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서양 신화와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해당 신화를 한국신화와 비교하거나 후대 중국·한국문화와의 상관관계를 살핀다.

책머리에서 그는 '산해경'에 나오는 물고기 모습의 남자 인어(저인)의 그림을 예로 들며 동양신화의 입구로 안내한다.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달리 인어가 남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그만큼 세상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의 교훈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중국의 창조 신화인 '1만8천년만에 잠에서 깨어난 거인 반고(盤古)'의 이미지가 인체와 자연을 동일시한 조선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까지 이어진다는 것도 일깨워준다.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도깨비 그림의 신화적 기원이 중국 황제와 패권을 겨루던 전쟁의 신 치우이며 이는 동이계 종족이 숭배했던 신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서울 서쪽에 감옥소와 화장터가 있는 이유도 죽음과 형벌을 주관하는 서방의 여신 서왕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정통신화학자의 선별안에 의해 고증된 3백여컷의 도판이 컬러로 실려있고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이미지 설명도 촘촘하게 박혀있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든 책이다.

서양신화가 수백만부씩 팔리는 시대에 우리 것,동양 신화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제대로 쓴' 역작이어서 더욱 미덥다.

2권도 곧 나올 예정이다.

3백60쪽,1만2천8백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