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 수위가 더욱 높아지게 됐다. 외교통상부에 근무하는 사무관 2명이 AP통신으로부터 김씨 실종과 관련해 확인 요청을 받고도 이를 묵살,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으로 25일부터 시작됐다. 당초 김씨 피살사건 처리 과정에서 무능력과 정보 부재로 비난을 받아온 외교통상부를 조사하기로 했으나 외교안보 라인에 있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국가정보원,국방부 등도 조사대상에 추가됐다. 이번 사건을 통해 외교·안보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외교부에 대한 감사원 조사의 핵심은 두가지다. 첫째 김씨 피랍 및 구출협상 전 과정에 대한 사실 확인이다. 둘째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외교안보 채널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한 집중적인 점검이다. 감사원은 외교부 직원들이 김씨 피랍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고도 이같은 사실이 없다고 대답한 뒤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은 경위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외교부에서 교민 보호 등과 관련된 잘못이 잇따라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외교부는 당분간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권위와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대내적으로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외교부의 조직 개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조사도 단행할 수 있다. 감사원은 AP통신 기자와 외교부 직원간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다. 외교부가 김씨 피랍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첩보나 단서를 접한 뒤에도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김씨 피살을 방조했는지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외교부가 김씨 피랍이 알려진 직후부터 피살까지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도 조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주이라크 대사관도 포함된다. 김씨가 피살된 순간까지도 외교부 차관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한 근거 등은 결코 소홀히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감사원은 외교부 외에 국방부 국정원 NSC 등 이번 사건 전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온 3개 정부 기관에 대해서 정보대응 체계와 유기적 협조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따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피랍 사실이 알려진 직후 NSC 상임위가 긴급 소집됐으며 외교부와 NSC간의 대책회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국방부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위해 수차례 이라크 현지조사에 나섰으나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국정원도 실종 과정,납치 주체,협상 진행과정 등과 관련해 이렇다 할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배 기자 khb@hankyung.com